전기없이 사는 전세계 20억명, 취사·난방 땔감에 전적으로 의존
태양열 조리기·태양광 랜턴 보급, 산림 훼손·주민 건강 문제 해결
초기비용 적은 '가정용 태양광' 등은 지속가능 에너지에 대한 관심 타고
국내 귀농인 중심으로 주목 받아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고 불리는 차드에서는 산림의 황폐화로 벌목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 이웃 국가인 카메룬에서 수입되는 숯이나 나무 장작을 구입할 여력이 없는 서민에게는 취사용 땔감을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2010년 6월 적정기술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서 차드의 수도 은자메나를 방문했을 때, 10살도 안 돼 보이는 여자 어린이가 동생들과 함께 도끼로 나무의 뿌리를 자르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팀원 한 명이 현지 아주머니에게 땔감이 없어서 끼니를 거른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을 때, 놀랍게도 그런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필자 일행이 수숫대를 이용해 숯을 제조하는 방법을 시연하자 이 아주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메르시, 코리아(고마워요, 대한민국)”라고 말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전기 가스 없어 나무 때는 주민들
통계에 의하면 다른 에너지원에 접근할 수 없는 개발도상국 20억명의 사람들에게 나무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며, 나무 소비는 심각한 산림 황폐화와 에너지 부족을 야기한다. 가스레인지와 비교해서 나무연료 화덕은 요리할 때 50배 이상의 분진, 일산화탄소, 탄화수소를 배출한다. 또 매년 250만명이 실내에서 바이오매스 연료를 태워 나오는 분진 때문에 사망한다. 전 세계적으로 2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기 없이 살고, 아프리카 사람 10명 중 9명이 전기를 공급받지 못한다.
흔히 빈곤 중에서도 ‘에너지 빈곤(Energy Poor)’이 가장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개도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선진국에도 에너지 구입 비용이 없어서 고생하는 빈곤층이 적지 않다. 미국에선 1970년대 초 오일 파동으로 인해 빈곤층의 고통이 컸던 것이 국립적정기술센터 설립(본보 5월 11일자 23면)의 직접적인 계기였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정마다 가스를 연결하고, 전기가 들어오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는 개도국 정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이 든다. 필자가 2011년부터 2년간 적정기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캄보디아의 경우, 대도시인 프놈펜이나 시엠립의 전기화율이 90% 이상이었고 도시 부유층은 주로 프로판 가스를 사용해서 취사를 했다. 하지만 시골로 들어가면 전기화율은 20~30% 이하로 뚝 떨어지고, 주민들은 주로 나무로 취사를 했다. 즉 개도국의 시골 주민들을 위한 에너지 적정기술에 대한 요구가 매우 크다.
취사를 위한 에너지 적정기술
부엌도 따로 없고 제대로 된 화덕과 굴뚝도 없는 집안에서 나무를 때 취사와 난방을 하면, 유독 가스에 그대로 노출돼 폐질환을 얻게 된다. 이를 막으려면 단열재를 사용한 화덕인 로켓스토브를 사용해 고온에서 완전 연소를 실시하면 된다. ㈜효성과 기아대책은 2012년 대학생 적정기술 해외봉사단인 블루챌린저를 운영하면서 베트남 하노이 북부 타이응웬 마을에 이들이 개발한 로켓스토브인 ‘블루스토브’ 100여개를 보급했다. 현지인의 요구를 반영해서 두 가지 요리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다시 디자인한 블루스토브의 현지 제작 가격은 개당 40달러 정도였다.
나무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취사를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농사를 짓고 남겨진 바이오매스를 활용해서 숯을 만드는 것이다. 수수대나 옥수수대를 직접 태우는 것과 비교할 때, 숯을 만들어서 사용하면 유해 가스의 발생이 현저히 줄어들고 부피가 작아져 보관에도 용이하다. 현재 한동대가 현지에 소규모 숯 공장을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태양열 조리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필자는 캄보디아 따께오 지역에서 태양열 조리기 120대를 시범 보급했다. 보급한 태양열 조리기는 SK-14이라는 모델로, 반사판의 지름이 140㎝이며 냄비의 물을 10~15분만에 끓일 수 있다. 나무를 사용했을 때의 조리시간과 맞추기 위해서 반사율이 높도록 표면 처리된 알루미늄 시트를 반사판으로 사용한 결과 태양열조리기 1대 가격이 120달러 정도가 됐다. 캄보디아는 비교적 일사량이 좋고 한국과 달리 우기에도 하루 종일 비가 오는 것이 아니어서 태양열 조리기를 사용하기에 적당했다. 주민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대당 120달러라는 가격은 주민들이 감당하기에는 적지 않아 이를 보급하기 위해선 보조금이 필요했다.
조명용 에너지 적정기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개도국 시골 마을에서는 대부분 등유 램프로 집안을 밝힌다. 하지만 등유 값은 날이 갈수록 오르고, 화재 위험도 높다. 또한 등유의 불완전 연소로 폐질환을 얻기 쉽다. 등유 램프 대신 사용 가능한 적정기술 제품으로 태양 빛을 사용하는 페트병 전구가 있다. 브라질의 기계공인 모저는 빈 페트병에 물과 표백제를 소량 첨가하기만 해도 최대 55W의 조도를 내는 페트병 전구를 개발했다. 일락 디아즈는 이것을 필리핀에 대량 보급했다. 하지만 페트병 전구는 지붕을 뚫어야 해서 가옥 구조에 따라 사용이 다소 제한적이다.
다른 조명제품으로 태양광 랜턴이 있다. 소형 태양 전지판(솔라셀)과 LED 램프가 함께 있는 일체형, 태양 전지판과 랜턴이 분리되어 있는 분리형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제품은 2006년 미국 스탠포드대 d.school에 개설된 ‘누구나 구입가능한 기업가적 디자인’ 수업시간에 개발돼 2007년에 창업한 d.light의 태양광 랜턴 시리즈이다. 초기에는 납 전지를 사용해서 무거웠으나, 지금은 리튬전지를 사용해 훨씬 가벼워졌다. 이 제품으로 d.light는 2010년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위한 어셔든상’을 수상했다. 필자는 2014년 우간다에서 이 제품 중 하나를 34달러에 구입했다. 다양한 사양, 가격, 디자인의 태양광 랜턴이 개발돼 있으며 국내에서도 야외 레저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태양광 랜턴은 제한된 면적을 밝히므로 책을 읽거나 하는 정도의 활동만 가능하다. 또한 전기로 작동하는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디젤 발전기를 사용하는 충전소까지 무거운 축전지를 들고 가서 돈을 내고 충전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Solar Home System?SHS)이다. 개도국에서 SHS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단체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삭티’와 인도의 ‘셀코’가 유명하다. 개도국 주민들도 전기 사용 요구가 크기 때문에 전력화가 안된 지역에서 경제력이 있는 주민들은 비싼 전기료를 내고 사설 전기를 끌어 쓴다. 따라서 적절한 금융제도를 제공해 초기 투자비용을 지원하면 SHS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필자도 캄보디아 따께오 지역에 SHS 60세트를 보급했다. 태양광 전지판의 크기에 따라 세트 당 설치 비용이 450~550달러 정도였다. 2년 동안의 장기 융자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태양열 조리기보다 주민들의 호응이 좋았다.
SHS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특히 주의해야 되는 점은 유지보수다. 직류를 교류로 전환해주는 인버터와 축전지는 사용 수명에 제한이 있으므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해야 한다. 이를 수행하는 교육이 실시되지 않으면 SHS가 쓸모 없는 흉물이 된다. 2008년 태국 매해 지역을 방문하였을 때 태양광 전지판은 낙서판으로 전락해 있었다. 개도국에 적정기술을 보급할 때, 현지인의 역량개발과 출구전략은 매우 중요하다.
SHS는 화석연료 및 원자력 에너지의 사용을 줄이고자 하는 선진국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최근에는 두 명의 한국 디자이너가 건물 유리벽에 간단하게 부착해서 휴대폰 등을 충전할 수 있는 포터블 태양광 충전기인 ‘윈도우소켓’을 개발하였다. 아직 시제품 단계이지만 판매 시 가격은 30달러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
태양열 집열판을 여러 개 설치해서 한 곳에 햇빛을 모으면 태양열 발전도 가능하다. 이 때 중심의 온도는 1,000도까지도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증기를 발생시켜서 발전기를 돌림으로써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인도 등에서는 사막지역에 이러한 태양열 발전 시설을 설치해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난방 또는 온수용 에너지 적정기술
태양열은 가정용 난방 또는 온수시스템으로도 사용된다. 온수시스템은 지붕 위에 설치한 검은색 관 속으로 물을 여러 번 통과시켜서 물을 데운 후에 이를 사용하도록 한다. 중국의 한 농부는 맥주병을 여러 개 연결하고 이 사이로 물을 통과시켜서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온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었다.
가정용 난방 시스템은 태양열로 집 외벽에 설치한 검은 관을 데운 후 공기가 이를 통과해 집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집안을 덥힌다. 필자가 방문했던 경북 봉화의 한 농가에서도 이 방법으로 집안 난방을 효율적으로 하고 있었다. 난방 시스템을 좀 더 컴팩트하게 디자인하면 학교의 외부 벽면에 설치해서 교실 난방을 실시하는 것이 가능하다.
필자는 2014년 초에 우간다에서 현지 공무원 및 적정기술 단체 관계자들에게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로켓스토브, 가정용 태양열 온수 및 난방시스템,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 등에 대해서 발표한 적이 있다. 산간 지역은 일교차가 크고 일반적으로 난방 시설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아 난방 및 온수 관련 적정기술에 대한 요구가 의외로 크다.
개도국에서는 에너지 빈곤층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선진국에서도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해서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귀농하신 분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 관련 적정기술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에너지 관련 적정기술이야말로 적정기술 사용처가 단지 개도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실례가 된다.
홍성욱·국립한밭대 적정기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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