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지하철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는 말이 어울릴 때가 많다. 간혹 웅성웅성 들리는 일부 승객의 대화소리나 휴대폰 벨 소리에 모두의 신경이 곤두설 정도다.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는 것을 꺼리는 ‘메이와쿠(迷惑) 문화’의 단면이다. 이런 환경 때문인지 몇 년 전만해도 지하철을 타면 많은 사람들이 손에 책을 들고 삼매경에 빠졌다. 일본 지하철의 상징과도 같다. 그 풍경이 지금은 변했다.
지난 16일 오후 9시쯤 도쿄역에서 출발한 JP야마노테선(山手線) 신주쿠(新宿)행 전철 안에선 30여명의 승객 중 졸고 있는 서너명을 빼고는 대략 절반이 넘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음악 듣는 사람과 게임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딱 2명만 제목이 드러나지 않게 겉 표지를 감싼 문고판 책을 읽고 있었다. 역시나 한 명은 50대로 보이는 여성, 다른 이는 할아버지였다. 조그맣게 신문을 접어 보는 사람이 한 명 있었을 뿐이다. 이를 봐도 젊은이들의 독서열기가 저조한 게 분명한 것 같다. 일본대학생활협동조합연합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공립 및 사립대 학부생 8,930명의 1일 독서시간은 평균 26.9분으로 조사를 시작한 2004년 이후 가장 짧아졌다. 독서시간이 ‘제로(0)’인 학생은 40.5%에 달했다. 남학생의 경우 2010년 35.9분이었지만 최근엔 29.2분으로 줄었고, 여학생도 2004년 31.6분이던 게 2013년 24.3분까지 떨어지는 등 내리막 길이다. 과거에는 지하철 등 통학시간에 책을 펼쳤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각종 사이트를 검색하거나 게임에 몰두한다고 한다.
물론 일본인의 독서 의지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전자책 사이트 ‘혼토’조사에 따르면 젊은 시절부터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익숙한 20대 남성의 60%가 전자책을 포함해 매달 1권 이상 책을 읽고 있었다. 기성세대는 “독서한 기분이 든다”거나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좋다”는 등 전통적 독서분위기를 선호하지만 젊은 세대는 “이동편리성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아 좋다”며 전자책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일본인의 독서 습관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도쿄 치요다(千代田)구에서 근무하는 30대 직장인은 “만원지하철에서 책을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 서서 책을 보다가 앞사람의 뒤통수를 찔러 눈치를 받기도 했다”면서 “지금은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때우는 게 보통이지만 오디오북을 듣거나, 사람들이 적은 퇴근지하철에서 통근 독서를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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