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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삽화, 듣는 소설… 책 밖 나온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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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삽화, 듣는 소설… 책 밖 나온 독서

입력
2015.07.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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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보급 늘며 양상 변모, 스마트기기 통해 외연 확장

종이책 대체 아닌 역할분담, 진중한 내용은 종이책 몫 여전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책따세) 대표를 지낸 서울 숭문고 국어교사 허병두씨는 하이브리드형 독서가다. 종이책뿐 아니라 전자책, 인터넷 동영상 유튜브, 스마트폰 어플 등 여러 수단을 넘나들면서 ‘독서’를 즐긴다. 이태백의 대표시 ‘월하독작(月下獨酌ㆍ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을 텍스트로만 읽는 걸 넘어 유튜브로 중국어 발음까지 듣는 식이다. 출퇴근길에는 노자를 전자책으로 읽고, 손바닥만한 종이책으로 중용을 읽는다. 우리말 풀이만 보기보다는 한자음을 계속 읽으면서 뜻을 음미한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한시를 읽게 되면서 더 많은 한시가 읽고 싶어졌고, 책도 더 사게 됐단다. 허씨는 “독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1998년 책따세 설립 때 “우리가 ‘책따’ 아니냐”고 할 정도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면 요즘은 오히려 독서방식의 외연이 넓어졌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 종이보다 스크린이 더 친숙한 호모스마트쿠스의 등장은 독서의 정의를 바꾸고 있다. 이제는 텍스트, 비디오, 오디오 등을 각각 이용하거나 융합한 새로운 방식의 읽어내기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수 천 년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렵듯이 독서의 진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종이책이 사라지고 곧 전자책이 종이책 자리를 꿰찰 것처럼 떠들었지만 그 속도는 예상외로 느리다. 한국전자출판협회에 따르면 국내 전자책 시장 규모는 5,800여억원(2013년 기준)으로 전체 출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 정도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도 성인의 전자책 독서량(1.0권)은 종이책(9.2권)에 크게 못 미친다. 오히려 2년 전 조사결과(1.4권)보다 떨어졌다. 종이매체만큼의 몰입도를 주지 못하고, 시각적 피로감이 훨씬 더하며, 게임 등 다양한 흥미 유인이 많은 스마트기기 특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자책은 종이책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기능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럼에도 전자책 시장 규모는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출판 유통 시장의 빠른 변화에 따라 종이책의 성장은 매년 정체 또는 1% 정도 줄어드는 반면 전자책은 매년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자책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은 2013년부터 주춤하고 있지만 전체 도서 시장의 20% 이상을 전자책이 차지하고 있다.

류영호 교보문고 콘텐츠사업팀 차장은 “스마트 디바이스와 모바일 네트워크가 커지면서 스마트 환경에 최적화된 독서 콘텐츠가 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예컨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만화, 소설, 영상이나 오디오가 융ㆍ복합된 경박단소(輕薄短小)형이 스마트폰 독서의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깊이 있고 무거운 소재를 다룬 종이책과의 역할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독서 환경의 변화는 훨씬 두드러진다. 독서공동체인 숭례문학당은 올해부터 카카오톡을 통한 온라인 독서토론을 꾸리고 있다. 스마트폰을 촉매제로 활용하는 경우다. 신기수 숭례문학당 대표는 “온라인 매체환경을 거부하고 무조건 책을 읽으라는 계몽적 독서운동이 아니라 환경에 맞는 새로운 독서방법이나 독후활동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직장이나 육아 등의 이유로 독서토론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의 반응이 특히 뜨겁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최병일(62)씨는 독서토론에 한번 오려면 왕복 4시간을 잡고 서울에 와야 했다. 하지만 숭례문학당이 올 초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9시 카톡 독서토론을 열면서 그는 열성 참여자가 됐다. 이 모임에는 파라과이에 사는 남성, 육아 때문에 외출을 할 수 없는 주부, 직장인 등이 참여하고 있다. 회사원 허은송(32)씨는 “온라인 독서는 읽기뿐 아니라 쓰기의 중요성을 실천하는 장이다. 미리 논거를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토론이 글쓰기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책 내용을 공유하는 소셜 리딩(Social reading) 역시 독서의 촉매로서 무시할 수 없다. 세계적인 온라인서점인 아마존이 2013년 인수한 소셜리딩 서비스 ‘굿리즈(Goodreads)’는 회원이 1,300만명이다. 이들은 각자 읽은 책에 대한 평점을 매기고 감상을 써서 나눈다. 우리나라에서도 책 전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속속 선보이고 있다. 썸리스트, 책속의한줄, 북플 등이다. 허씨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전자책, 기존의 종이책이 공존하는 독서의 시대”라며 “그 동안 책을 멀리 했던 사람들도 새로운 책의 형태나 독서 방식을 통해 독서를 시작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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