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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그리스 사태, 상처만 남은 건 아니다

입력
2015.07.1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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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휩쓰는 거센 포퓰리즘 바람

미몽 일깨운 원칙의 승리로 볼 수도

건강한 통합유럽을 위한 쓴 약 효과

16일(현지시간) 그리스 의회에서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합의안 개혁안에 대한 표결 절차기 진행되고 있다. 그리스 의회는 격론 끝에 16일 새벽 4개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의회가 다룬 안건은 부가가치세(VAT) 인상, 연금 축소, 통계청의 독립성 보장, 재정 지출 자동 삭감 등 총 4개 법안이다. 뉴시스
16일(현지시간) 그리스 의회에서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합의안 개혁안에 대한 표결 절차기 진행되고 있다. 그리스 의회는 격론 끝에 16일 새벽 4개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의회가 다룬 안건은 부가가치세(VAT) 인상, 연금 축소, 통계청의 독립성 보장, 재정 지출 자동 삭감 등 총 4개 법안이다. 뉴시스

그리스 사태에서 얻은 자는 누구이고, 잃은 자는 누구일까. 얼핏 보면 승자는 없어 보인다. 유로존 전체로 보면 19개 회원국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여부로 갈갈이 찢겼다. 당사자인 그리스와 채권국은 물론 독일과 프랑스, 북쪽의 부국와 남쪽의 빈국, 동유럽과 서유럽이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엇갈렸다.

“그리스보다 더 못 사는 나라들이 많은데 그리스에만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 게 맞느냐”는 일부 회원국들의 항변에서는 깊은 감정의 골이 묻어난다. 앞으로 있을지 모를 ‘제2의 그리스’를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지 못한 것도 뼈아프다.

물론 가장 큰 패배자는 그리스다. 이달 5일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을 과감히 뿌리치며 국민투표라는 강수를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그리스 수뇌부는 ‘재정 전이’의 공포감이 채권단에게 충분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속된 말로 ‘배째라’로 나가도 유로존이라는 대마(大馬)를 위해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채권단이 더 걱정한 것은 아무런 채찍 없이 그리스를 용인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양보의 전이’였다. 워싱턴포스트의 지적처럼 돈보다 신뢰와 원칙의 붕괴를 유로존의 미래에 더 큰 위협으로 본 것이다.

돌이켜보면 두 가지는 애초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는 것도, 풀어질 대로 풀어진 도덕적 해이를 돈으로 틀어 막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리스가 이 지경이 되도록 채권단은 뭐했느냐는 비판은 나올 수 있겠으나, 그것은 처방의 방법 차이에서 비롯된 논란이지 그리스의 원죄를 대신 뒤집어 써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독일을 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원칙과 신뢰가 최우선적 가치가 돼야 한다는 것은 그리스 사태가 단지 유로존의 존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유럽에 극우ㆍ극좌의 극단주의 세력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올해 들어서도 극우성향의 덴마크국민당 우파연합이 지난달 총선에서 승리해 좌파연정을 무너뜨렸고, 4월에는 핀란드 극우정당이 총선을 통해 연정에 참여했다. 이미 주요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프랑스의 극우 국민전선(FN)은 물론, 올해 말 총선이 예정된 포르투갈 등 남유럽에서도 극좌 바람은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경제를 명분으로 한 반이민,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반EU(유럽연합)를 주장하고 있고, 이런 포퓰리즘이 대중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것이다. 5월 스페인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좌파정당의 모토도 ‘외국인이 일자리를 뺏어가고 복지부담을 늘리는 것에 분노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리스 극좌 정부의 포퓰리즘을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아일랜드, 키프러스처럼 이미 비슷한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혹독한 긴축안을 받아들였던 나라들이 ‘그럼 우린 뭐였냐’고 할 항의는 둘째 문제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시작해 인종차별, 이동의 자유 제한 등으로 이어지는 대중영합 바람이 유럽통합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개월에 걸친 협상에서 메르켈 총리가 지킨 원칙은 ‘빚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포퓰리즘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 사태는 유럽의 미래를 놓고 앞으로 치러야 할 전쟁의 전초전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해법의 출발점은 적절했다.

메르켈 총리가 맞닥뜨려야 할 큰 고비가 또 하나 남아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다. 5월 총선에서 압승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하겠다고 내건 공약이다. 국민의 반EU 정서를 존중한 것이라고 하나 내심은 EU를 위협해 중ㆍ동부 유럽의 이주 노동자들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리스와는 체급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영국의 일탈 조짐은 메르켈에 큰 도전이다.

그리스 사태는 험난하고 고통스런 것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럽에 쓴 약이 됐을 것이다. 건강한 유럽을 위한 신념이 그 승자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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