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1643~1727)이 인생 말년인 1696년부터 화폐위조범을 잡는 조폐국 감사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익히 알려진 과학자 뉴턴 대신 집요하고 철저한 수사관 뉴턴을 조명했다.
뉴턴은 1687년 고전물리학의 기본 원칙을 수학적으로 정리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이해(프린키피아)’를 써 당대의 지성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명성 덕에 자신의 전공 분야와 동떨어진 일도 맡겨졌다. 영국 재무장관 윌리엄 라운스는 1695년 그에게 불량화폐의 유통과 은화 부족 문제에 대한 조언을 구했고, 뉴턴은 날이 갈수록 낡아가는 옛 화폐를 대체할 새 화폐를 찍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초 라운스가 뉴턴에게 조폐국 감사를 맡긴 것은 그가 주장한 화폐개주(改鑄) 작업을 감독할 추진력 있는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폐국 감사의 본래 업무는 불량화폐를 유통하는 범죄자들을 잡는 수사관 역할이었다. 뉴턴은 처음에는 이 일을 꺼렸지만 화폐위조업계의 일인자라 할 만한 위조범을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을 걸고 그를 추적했다.
윌리엄 첼로너는 금세공업으로 익힌 손기술과 뛰어난 언변으로 화폐위조에서 대단한 활약을 했다. 범죄가 들통날 때마다 증거를 폐기하고 공모자를 밀고해 번번이 수사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뉴턴은 정보원과 심부름꾼을 고용해 그의 범법 사실에 대한 정보를 모았고 끝내 1699년 반역죄로 첼로너를 교수대에 세웠다.
뉴턴의 전기작가들 중 한 명인 프랭크 매뉴얼은 이 때의 뉴턴을 “피에 굶주려 있었으며 수사관으로서 그 갈증을 합법적으로 풀었던 사람”으로 묘사했다. 이 책의 저자 레벤슨은 뉴턴이 일생 동안 철저한 기독교도이자 신학자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반박한다. 화폐 주조는 신으로부터 권능을 위임받은 왕실의 권한이었는데 첼로너는 이를 비웃듯 가짜 화폐를 만들었고 그것이 뉴턴의 신앙심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화폐위조범 수사관, 그리고 독실한 신자로서의 뉴턴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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