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찾은 시민들 안전사고 위험
주행자 제재할 처벌규정도 없어
일본에선 5년 이하 징역에 처해
지난 12일 주말을 맞아 서울 송파구 잠실한강공원을 찾은 박항석(34)씨는 세 살 된 아들과 함께 보행도로를 걷다가 봉변을 당했다. 전용도로를 이탈해 달려오는 자전거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다 대신 자전거와 부딪혀 바닥에 넘어진 것. 상처는 왼쪽 팔 부위에 생긴 긁힘 자국이 전부였지만 하마터면 어린 아들이 큰 부상을 입을 뻔한 상황이었다. 가슴을 쓸어 내린 박씨가 항의차 자전거 운전자에게 다가가자 진한 술 냄새가 났다. 박씨는 17일 “오후 2시밖에 안 된 시간에 이미 만취상태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있어 놀랐다”며 “공원에 아이들을 데려오는 가족이 많은데 ‘음주 자전거족’이 버젓이 주행을 하고 있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강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음주 자전거족’ 탓에 신음하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판’을 벌이는 ‘라이더’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점심시간에 찾은 잠실한강공원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막걸리로 목을 축이거나 맥주 한 캔을 손에 들고 자전거 위에 앉아 있는 이용자까지 각양각색의 라이더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날 동호회 회원들과 공원을 찾았다는 박모(43)씨의 얼굴은 오후 1시를 갓 넘긴 대낮임에도 벌겋게 달아 올라있었다. 그는 “동호회 회원들과 라이딩을 즐기러 왔다가 기분이 좋아 막걸리 한 잔을 했다”며 “자동차 운전도 아닌 자전거 주행인데 술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전거 음주운전도 차량 음주운전과 마찬가지로 운전자의 주의력을 저하시키며, 이로 인한 교통사고 발생시 타인의 신체와 재산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늘어나는 자전거 교통사고 가운데 상당수는 음주운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자전거 교통사고는 2000년 6,352건에서 지난해 1만6,664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는데, 지난해의 경우 6~8월 여름철 발생건수(4,332건ㆍ32.4%)가 가장 많다”며 “무더운 여름철 주행 중 목을 축이기 위해 음주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전거 주행자들의 음주가 만연하지만 이들을 제재할 마땅한 규정은 없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면허증이 따로 없는 자전거의 경우 음주단속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주행자의 음주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또 도로교통법 제50조는 ‘자전거 운전자는 술에 취한 상태 또는 약물의 영향과 그 밖의 사유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자전거를 운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벌칙이나 과태료가 없는 훈시조항일 뿐이다. 이에 따라 2012년 7월 국회에서 자전거 음주운전에 대해 2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상임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자전거 음주운전에 대해 독일에선 1,500유로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으며, 일본에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행법상 자전거 음주 주행자를 단속할 수는 없지만, 자전거는 차로 분류되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교통사고로 분류돼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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