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 14일. 부산시 수도국 공무원이던 박정기는 정년 퇴임을 한 해 앞두고 둘째 아들 종철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509호에서 박종철이 고문 끝에 사망한 것이다. 이틀 뒤 박정기는 아들이 왜 죽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모른 채 임진강에 유해를 뿌렸다. 정부는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거짓말을 했고, 이는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며 민주주의와 인권에 눈을 뜨게 된 박정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활동을 시작했다. 분신ㆍ투신ㆍ음독ㆍ고문ㆍ의문사로 세상을 떠난 자식들을 끌어안고 사는 부모들, 떠난 자식들이 남기고 간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여생을 사는 이들과 손을 잡았다.
저자는 박종철 열사의 고문사 이후 박종기가 유가협의 일원으로서 활동한 10년의 궤적을 따른다.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명예를 되찾고 의문사 진상 규명을 위해 보낸 시간들. 이는 아들이 못다 한 삶을 이어온 박종기의 기록이자, 시위 중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노동자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의 이야기이다. 대우중공업 창원공장 노동자 정경식의 의문사와 명지대생 강경대 치사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쏟은 노력의 흔적도 담겼다. 궁극적으로 유가협 회원들의 저항과 연대를 전해준다.
1999년 12월 28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것으로 이 책의 여정은 끝을 맺는다. 하지만 저자는 그걸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억울하게 자식을 떠나 보낸 부모들의 처절한 눈물이 오늘도 어디선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박정기의 일대기에서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끝이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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