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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장 진화한 캠퍼

입력
2015.07.1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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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렇게 쓰고 나니 당장 침낭과 텐트를 꺼내 배낭을 꾸리고 싶어진다. 버들치가 헤엄치는 계곡에 텐트부터 쳐놓고, 휴대전화를 끄고 근처의 산에 오르기. 땀을 쏟으며 몇 시간쯤 걷고 내려와 나무 그늘 아래 멍하니 앉아있기. 서늘한 밤의 냉기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정화하기. 밤하늘의 별을 목이 부러져라 올려다보기. 랜턴 불빛에 의지해 잠들기가 아까울 만큼 재미있는 소설 읽기. 침묵의 휘장을 겹겹이 두른 어둠의 품에서 꿈 없는 잠에 들기. 텐트 사이로 비쳐 드는 눈부신 햇살과 새들의 지저귐에 깨어나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웅웅거린다.

대단한 캠핑 경력이라도 지닌 것 같지만, 혼자서 캠핑을 다닌 경험은 남미 대륙의 파타고니아에서 보낸 석 달이 전부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캠핑은 텐트와 침낭을 비롯해 팔일 치 식량을 메고 칠레의 국립공원을 열흘 간 걸어 다닌 일이다. 팔일 치 식량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할 수 있었다면 결코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이후 나는 ‘일주일치 식량을 지고 해발고도 4,000m이상을 걸어보지 않은 이와는 인생의 고단함을 논하지 않겠다’는 헛소리를 종종 하곤 한다.

돌이켜보면 파타고니아의 야영장에서 보낸 석 달이 내내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다. 사흘쯤 굶은 듯 달려드는 모기떼와 온갖 벌레들. 대지의 기운을 느끼기도 전에 온 몸을 파고드는 울퉁불퉁하고 차갑고 습한 텐트 바닥. 뜨거운 햇살에 벌겋게 달아오르는 피부와 배낭에 쓸려 상처 난 어깨. 무거운 배낭에 낑낑거리는 내 앞을 사뿐사뿐 지나가는, 돌쇠를 대동한 맨 몸의 여자. 아무리 대자연을 반찬 삼아도 사흘이면 지겨워지는 ‘캠핑 푸드’. 어떤 캠핑장에서도 한 번은 꼭 마주치게 되는, 민폐형 인간. 내가 캠핑만 떠나면 기다렸다는 듯 찾아오는 비바람.

그 모든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드는 캠핑의 매력은 무엇일까. 편리와 안락을 잠시나마 거부하는 행위에 왜 그토록 빠지게 되는 걸까. 캠핑은 최소한의 도구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어른의 놀이다. 도시의 콘크리트 빌딩에 갇혀있던 무기력한 육체를 끌어내어 육체성을 되살리고 오감을 일깨우는 시간이다. 통제가 불가능하고 예측이 어려운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의 감각을 예민하게 되살려 진화를 꿈꾸기. 문명의 노예로 살아가며 소비로만 존재를 증명 받던 일상을 벗어나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결국 캠핑은 우리 유전자 안에 각인된 야생의 기억을 재생함으로써 나라는 존재를 확장시키는 경험이다.

지금 우리의 캠핑이 그런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캠핑장 풍경은 서글프다. 휴가철이면 빈틈없이 주차장을 메운 차량의 물결, 이웃 남자의 코고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는 간격으로 세워진 텐트들. 그 앞에 줄 맞춰 늘어선 바비큐 그릴. 고기 굽는 냄새는 솔숲의 향기까지 지워버린다. 음주가무는 내면을 응시할 고요한 밤을 빼앗는다. 아침을 깨우는 새들의 지저귐은 옆 텐트의 소음에 묻혀버린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더 가깝게 하기 위해 텐트 세우는 간격을 아주 멀리 한다’는 베두인 족의 격언은 현대의 캠핑장에서 제1규칙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 같다.

더 나아가 캠핑장은 문명의 화려한 도구를 자랑하는 전시장이 되었다. 텐트 안에 들여놓은 야전침대와 난방 기구, 별도의 그늘막 텐트와 그물침대,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들, 그 모든 것들을 주차장에서 캠핑장까지 옮기기 위한 왜건 등등. 이제 우리는 문명의 편리함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은 채 자연을 누리려는 욕심까지 부린다. 그런 욕망이 ‘글램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도시에서 도망치지만, 도시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가지고 온다”는 에머슨의 싯귀처럼. 나에게 있어 가장 진화한 캠퍼란 가장 원시적인 캠핑의 방식으로 기꺼이 돌아가는 자다.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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