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진 골목 많은 숙명여대 앞 등 최근 출몰 잦아지며 적발 잇따라
SUV 타고 옮기면서 노출 행각도… 경찰 "공연음란죄 적용 구속 수사"
여성 앞에 불쑥 나타나 낯뜨거운 음란행위를 벌이고 달아나는 일명 ‘바바리맨’이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앞에서 잇따라 적발됐다. 숙대 인근은 하숙집과 원룸 등 주거지가 밀집된 데다 외진 골목이 많아 바바리맨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지난 3일 오전 11시쯤 숙대 기숙사 인근 청파동2가 골목길에 바바리맨이 출몰했다. 공무원시험 준비생인 박모(34)씨는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으로 혼자 길을 걷던 여대생을 따라다니던 중 차안에서 바지와 속옷을 종아리까지 내린 채 신체를 노출하는 행각을 벌였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는 8년째 계속된 시험준비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아내가 성관계를 거부하자 욕구를 참지 못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14일 새벽에는 학교 인근 골목에서 육모(32)씨가 여대생 2명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육씨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성기능에 문제가 있다. 그냥 봐달라”고 태연하게 말한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두 사람을 검거해 각각 공연음란죄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6일 밝혔다.
숙대 앞은 여대 중에서도 바바리맨이 유독 많이 출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숙대생들조차 학교에서 남영역으로 가는 골목과 기숙사 인근 후미진 골목들을 ‘변태골목’으로 부를 정도다. 기자가 숙대 인근 지역을 둘러본 결과, 다닥다닥 붙은 주택과 원룸 건물들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었다. 숙대 졸업생 허모(28)씨는 “학교가 예전부터 바바리맨의 성지로 유명했다”며 “재학 시절 혼자 걸어가고 있는데 바지를 벗고 있는 40대 남성이 나타나 깜짝 놀라 앞에 가던 행인들에 섞여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숙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홍실(23)씨도 “특히 귀가가 늦는 시험기간에 바바리맨을 봤다는 목격담이 많다”며 “한 번 피해를 당한 친구들은 혼자 다니는 것을 꺼리는 등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11년째 근무 중인 숙대 보안팀장은 “과거 하루 1건씩 발견될 정도로 많았지만 지금은 학생들의 적극적인 신고와 경찰 예방활동으로 서너 달에 1건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단순한 신체노출 행위라도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예방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적 예가 지난해 3월 숙대 기숙사 인근 300m 구간 바닥에 설치한 ‘발광형 표지병’. 주로 교통안전 시설물에 쓰이는 발광형 표지병은 낮 시간 동안 태양광을 충전한 뒤 밤에 빛을 발하는 기구로 주택가에 설치된 것은 처음이다. 한밤 중 조금이라도 더 골목길을 밝혀 여성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올해 4월에는 피해를 신고할 때 범행장소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표지판을 야광 재질로 새단장했다. 용산서 생활안전과 관계자는 “여성들도 밤 늦은 시간 이동이 불가피할 경우 경찰이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여성안심귀가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바바리맨의 행위는 경범죄에 해당하지만 피해자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남기는 만큼 처벌도 강화되는 추세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단순 노출은 범칙금을 내게 하는 데 그쳤으나 앞으로는 가급적 형법상 공연음란죄를 적용하고 성범죄 경력이 있을 시에는 구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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