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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저승의 세계, 명왕성

입력
2015.07.16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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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주항공국(NASA) 우주탐사선 뉴호라이즌스(New Horizons)가 명왕성 옆을 스쳐가며 지구와의 교신에 성공했다. 지난 15일 명왕성 표면 상공 1만㎞, 지구로부터 약 48억㎞ 떨어진 곳을 지났다고 한다. 빛으로 4시간 30분쯤 걸리는 거리다. 교신을 위해선 왕복 9시간이 필요하다. 인류가 만든 가장 빠른 물체인 뉴호라이즌스가 초속 14㎞로 달리고 있지만 거기까지 가는데 9년 6개월이 걸렸다. 이번에 수집된 데이터들이 NASA에 완전히 전송되기까지 또 18개월 정도가 더 걸린다고 한다.

▦저승세계의 왕이란 의미를 갖는 명왕성(冥王星)은 공간보다 시간 차원에서 더욱 상상을 자극한다. 공전주기 248년, 자전주기 6.4일. 지구 개념이다. 명왕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지구는 248바퀴 도는 것이며, 명왕성에서의 하루는 지구에서의 6.4일이라는 얘기다. 만약 순간이동으로 명왕성에 가서 1년을 지내고 돌아온다면 지구에서는 248년이 흘렀을 것이며, 날짜로 보면 그 6.4배가 지났을 것이다. 동화 속 신선세계, 영화 인터스텔라 등의 단초가 어렴풋이 풀릴 듯 하다.

▦뉴호라이즌스 소식에 미국이 열광하고 있다. 명왕성은 ‘수금지화목토천해명’ 9개 행성 가운데 미국이 유난히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이웃인 화성은 고대로부터 알려져 있었던 것. 목성과 토성은 갈릴레오가 1610년 최초로 관측했고, 이후 수성(1639)과 금성(1656)을 실측하고, 천왕성(1781)과 해왕성(1846)을 발견한 천문학자는 모두 유럽인이었다. 명왕성은 1930년 2월 미국인 클라이드 톰보(1906~1997)에 의해 발견됐다. 태양계 행성지도를 미국인이 완성했다는 자부심이 컸다.

▦ 톰보 사후(死後) 명왕성은 행성이 아니라는 주장들이 이어졌고, 2006년 유럽 천문학자 중심의 국제천문연맹(IAU)은 이를 공식 발표했다. 명왕성은 태양계 바깥쪽 수많은 왜소행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천왕성 해왕성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 천문학계는 시큰둥했으나 이후 IAU 주장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뉴호라이즌스가 명왕성에 서울~뉴욕 만큼 가까이 다가가 많은 증거들을 미국 NASA로 보내오고 있다. 명왕성의 ‘지위’를 둘러싼 유럽과 미국의 자존심 대결이 볼 만하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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