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첨부파일 증거로 불인정
전원일치로 원심 깨고 파기환송
선거법 위반 유·무죄 판단은 안 해
원 측 보석 청구 "이유 없다" 기각
사법부 최종결론 수개월 미뤄져
원세훈(64)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의 항소심 판결이 16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대법원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 범위를 1심보다 대폭 늘린 2심 판결을 깨게 된 이유로 “증거능력 인정에 대한 법리오해”만을 내세웠을 뿐, 선거법 위반 혐의의 유ㆍ무죄 여부는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실체, 곧 지난 대선 시기에 행해진 국정원의 ‘댓글 공작’이 불법 선거개입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유보해 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이날 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대법관 13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 전 원장 측이 청구한 보석 신청도 “허가할 만한 이유가 없다”면서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유죄 판단에 핵심 증거로 작용했던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이메일 첨부 파일인 ‘425지논’과 ‘시큐리티’에 대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파일들은 법정에서 김씨가 “내가 작성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혀 1심에선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으나, 항소심에선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 문서에 해당하며,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이 인정됐다. 그 결과, 국정원 심리전단이 사용했다는 트위터 계정 수와 트윗글(리트윗 포함) 수도 ‘175개, 11만여건’(1심)에서 ‘716개, 27만여건’(2심)으로 크게 늘어났다. 국정원 측의 정치ㆍ선거 관련 사이버 활동 범위를 대폭 확대시킨 결정적 증거였던 셈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425지논 파일의 내용 대부분은 출처가 불명확하고 조악한 형태의 언론 기사 일부분과 트윗글 등이며, 시큐리티 파일에 기재된 트위터 269개 계정도 그 정보의 근원과 기재경위 등이 불분명하다”면서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국정원 직원이 업무를 위해 관행적ㆍ통상적으로 작성한 문서로는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법원은 “원심 판결의 기초가 되는 425지논, 시큐리티 파일의 증거능력이 부인된 만큼, 원심 판단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고 법률심인 상고심으로선 그 당부를 판단할 수도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어 “적법한 증거에 의해 심리전단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 범위를 먼저 확정한 뒤 정치관여ㆍ선거개입 여부 판단을 해야 하는데, 선행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상 사건의 실체 판단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증거 범위를 재확정해 본안 심리도 다시 하라는 취지로,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인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부분에 대해선 아예 판단 자체를 안 한 것이다.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 논란을 야기했던 이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결론도 수개월 후로 미뤄지게 됐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9월 국정원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올해 2월 서울고법은 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 징역 3년에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하고 그를 법정구속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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