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독일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캠핑장 한 구석에 모여 앉았습니다. 유럽평화기행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지 이야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초 계획은 파리에서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하루는 각자 자유시간을 보내기로 돼 있었지만, 과연 그래도 될까 하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들 이번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바로 우리 기행의 목적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과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를 세계인들에게 호소하는 캠페인이었다는 의견들을 쏟아냈습니다.
우리는 논의 끝에 자유시간을 갖는 대신 첫 수요시위를 열었던 파리에서 평화 캠페인을 한번 더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부랴부랴 집회신고를 내고, 알프스의 만년설이 바라다 보이는 인터라켄 주변의 튠 호수를 거쳐 파리로 향했습니다.
13일 우리는 다시 파리 인권광장을 찾았습니다. 폭염에 시달렸던 첫 수요시위, 폭우로 마음 졸였던 뮌헨 수요시위 때와는 달리, 우리는 캠페인을 펼치기에, 관광객들은 여행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선선한 날씨였습니다. 간밤에 캠핑장에서 추가로 복사했던 유인물 200여장이 금세 동이 났습니다. 그렇게 준비해 간 모든 것, 그간 축적한 모든 경험들이 잘 버무려진 자리였습니다. 파리지앵과 관광객들은 “일본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우리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세계인 1억명 서명에도 동참해 주었습니다. 4개월간 유럽을 여행 중이라던 한 청년은 1시간 넘게 우리 곁을 지키며 응원해 주었고 평화를 염원하는 대형 걸개그림 작업도 함께했습니다.
긴장과 걱정, 궂은 날씨 등으로 인해 아쉬움이 남았던 이전 수요시위들에 비하면 ‘완벽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멋진 캠페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니 다들 홀가분하기보다는 섭섭한 마음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길, 모두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깊은 상념에 잠겼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초복을 맞아 삼계탕으로 만찬을 차리고 해단식을 가졌습니다. 첫날 샤를 드골 공항을 막 빠져 나와 만난 파리의 풍경에 심장이 두근두근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열 아흐레가 지났습니다. 그간 우리는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독일-스위스를 다니며 약 6,200km를 달렸습니다. 사람들을 모으고, 기행 코스를 정하고, 캠페인 계획을 짜고, 세 번의 사전합숙을 진행하며 서로를 알아가던 국내에서의 준비 과정도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단단히 각오하고 꼼꼼히 준비해 떠난 길이건만, 한뎃잠을 자고 삼시세끼를 손수 해먹으며 캠페인을 이어간 스무 날의 대장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입시위주의 교육에서는 알지 못했던 역사를 눈과 귀, 그리고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배우고 훌쩍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평범한 배낭여행으로는 가보지 못할 곳을 애써 찾아갔고, 파리와 뮌헨 한복판에서 벌인 수요시위와 플래시몹 등 혼자였다면 엄두도 못 냈을 일들을 해 냈고, 나치의 오하두흐 학살에서 살아남은 카미유 쓰농 할머니와 같은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 직접 얘기를 듣는 보석같이 값진 시간도 가졌습니다.
단원들 서로를 알게 된 것도 큰 행운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우리는 하는 일도, 관심사도 다르지만 어느새 든든한 친구가 됐습니다. 해단식에서는 이별의 아쉬움을 담아 서로에게 전하는 말을 적은 롤링페이퍼를 주고 받으며 평화기행 이후에도 다양한 활동으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가천대 1학년 윤혜지씨는 “스무 살 여름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 관심을 둔 것은 ‘유럽’ 이었지만 이젠 ‘평화’에 더 눈이 가네요. 평화를 위해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인천대 2학년 이승연씨는 “왜 주변에서 이 기행을 그토록 추천했는지 알겠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제 삶 속에 이 기행이 있어서 다행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진지함과 배움에 대한 열정,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진실된 활동으로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유럽을 품은 한국의 청년들이여, 고맙습니다!” 파리에서의 감동적인 역사 강의에 이어 독일의 다하우수용소 방문 때도 함께했던 장 살렘 소르본대학 철학과 교수님의 말씀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우리는 14일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지금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일상이 시작됐지만, 2015 유럽평화기행을 통해 배우고 느끼고 나눈 것을 잊지 않고 실천하며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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