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가 한글을 처음 봤던 순간을 기억한다. 인디애나 대학교의 대학원에 있었던 1990년대 중반, 한 한국인 친구가 내게 논문집을 보여줬다. 당시 내가 본 페이지의 어떤 글자도 읽을 수 없었으나 글씨의 실제 모습에 매료됐다. 그 때 내 눈에 한글은 극적인 글자체의 중국어와는 달리 매우 정돈되고 구조적으로 보였다. 특히 작은 원(편집자주:ㅇ과 ㅎ을 말함)이 인상적이었는데, 다른 어떤 언어에서도 그와 같은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선과 원의 추상적인 패턴밖에 볼 수 없었던 시절로 돌아가, 그때처럼 한글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앞에서 설명한 한글의 첫 인상이 내 기억에서 아주 천천히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글을 보면, 줄이나 원이 아닌 문자와 단어들을 볼 수 있다. 한글에 대해 이미 알아버렸기에, 한글을 배우기 이전의 눈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때때로 처음 한국에 왔던 1997년 그 때처럼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다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 이후부터 입맛이 변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처음 비빔밥을 맛보던 순간이나, 처음으로 김치에 도전했던 순간을 명확하게 기억한다면, 매우 유용하고 흥미로운 일이 될 텐데 말이다. 한글에 대한 추억처럼 흐릿하게라도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한국음식에 대한 첫 인상은 영원히 사라져가고 있다.
다른 것에 대한 열정이 서서히 쇠퇴하고는 있는 가운데, 내가 특정한 한국 음식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장기적인 변화는 그래도 의미가 있다. 냉면이 그렇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차가운 면’이 매력적이라 생각했지만, 맛이 조금 밋밋하고, 식감은 겁나도록 질겼다. 진짜 냉면의 맛을 느끼기까지에는 4~5년이 걸렸다. 특히, 음식 자체의 시원함 보다 새콤한 맛이 여름 더위의 최고 해독제임을 이해 하면서 냉면에 대한 나의 애정은 자라나기 시작했다.
한편, 해가 갈수록 김치에 대한 애착은 더 강해졌다. 나는 절대로 김치를 싫어한 적도 없고, 그 아삭함에 거의 중독 됐으며, 발효된 배추의 맛은 항상 나를 놀라게 한다. 몇 년 전, 내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들의 대부분이 김치 같은 스타일의 음식과 함께 소비된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 보쌈의 경우, ‘보쌈-김치’의 맛이 매우 놀라운데, 만약 김치와 함께 먹지 않는다면 보쌈 자체만을 그다지 즐길 것 같지는 않다. 자칫 싱거울 수 있는 콩국수(아마도 한국 음식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도 김치와 함께 해야 맛있는 음식이다.
아마도 지난 몇 년 동안 내게 일어난 일들이 한국 요리에 대한 진가를 알게 해 준 것 같다. 대부분의 서양 요리는 상호 보완적인 맛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중시한다. 물론 대조적인 맛이 잘 섞여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서양 요리(이른바 ‘한국식’ 서양 요리)의 뼈대로부터 나온 상호보완의 맛이다.
한국 음식의 가장 큰 매력은, 이런 대조적인 맛들이 충돌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의 매우 모순된 맛이 서로 충돌하여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낸다. 아마도 이것이 한국의 전통 밥상엔 왜 그렇게 많은 음식이 나오는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리라. 또한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 여행을 갈 때 가방의 반을 왜 인스턴트 라면으로 채우는지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반은 서양 음식, 반은 한국 음식을 차리고 있는 내 입장에서 여전히 라면은 놔두고 떠나야 할 음식이다. 그러나 작은 팩의 김치를 반대할 순 없을 것 같다.
배우 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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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ste of Korea
I still remember the first time I saw the hangeul alphabet. In the mid-1990s, when I was in graduate school at Indiana University, a Korean friend showed me the inside of a book of essays. At the time, I didn’t know the pronunciation associated with any of the symbols I saw on the page. But I remember being fascinated by the actual look of the script. To my eyes then, it looked very controlled and organized, in contrast to the dramatic flourishes of Chinese. The small circles left a particular impression, because I hadn’t seen anything like them in the scripts of other languages.
Sometimes I wish I could open up a book of Korean and see the text in the same way as I did back then, as nothing but abstract patterns of lines and circles. Because to be honest, the first impression that I described above is slowly fading from my memory. Now when I look at Korean text, I see characters and words, not lines and circles. It’s not possible for my eyes to momentarily unlearn what I already know about hangeul.
In the same way, I sometimes wish I could taste Korean food in the same way I did in 1997, when I first moved to Korea. Because in the years since, the way I taste Korean food has changed. It would be useful and interesting if I could clearly remember my first taste of bibimbap, or the first time I tried kimchi.
But my memories of these first impressions are not just hazy like my memories of hangeul, they have vanished for good.
Instead, what I have is a sense of long-term changes, of how I have slowly come to love certain Korean foods while my enthusiasm for others has slowly waned. One example is naengmyeon. Although the idea of cold noodles appealed to me when I first came to Korea, I found the taste a bit bland, and the chewiness intimidating. It was four or five years before I started to really taste naengmyeon properly. Particularly, when I understood that it is the vinegary taste of naengmyeon, rather than its icy temperature, that is the best antidote for the summer heat, my affection for it began to grow.
Meanwhile, my attachment to kimchi has grown stronger with each passing year. I never disliked kimchi, but the fact that I could become almost addicted to crunchy, fermented cabbage took me by surprise. A number of years ago, I realized that most of my favorite Korean foods are those that are consumed with a particular style of kimchi. Bossam, for example, tastes amazing with bossam-kimchi, but without the kimchi I don’t think I would even enjoy eating it. Kong-guksoo is another food that is delicious with kimchi (perhaps my favorite Korean food of all), but slightly bland without it.
I suppose what has happened to me over these years is that I’ve come to appreciate the contrasts in Korean food. Much of Western cooking is based on subtle interactions between complementary tastes. Of course, there are contrasting tastes mixed in as well, but it’s the complementary tastes that form the backbone of Western food (something that is often lost in ‘Korean-style’ Western cooking).
The biggest charm of Korean food, by contrast, lies in the collision of contrasting tastes. Two quite contradictory flavors crash into each other, and create something new. Perhaps this focus on contrasting tastes explains why traditional Korean meals have so many side dishes. Perhaps it explains why many Koreans travel abroad carrying half a suitcase of instant ramyeon. As for myself, with a palate that is increasingly half-Western, half-Korean, I’m still going to leave the ramyeon at home. But I guess I wouldn’t object to a small packet of kim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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