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이 내부에서 반칙을 하면서 밖으로는 자비를 말하려고 들면, 선한 외피를 입고 못된 짓을 하는 결과 밖에 안됩니다.”
법인 스님이 1994년 대한불교 조계종단의 개혁 당시 비리의혹과 3선 시도로 승단에서 추방된 서의현(80ㆍ본명 서황룡) 전 총무원장의 승적을 회복시키기로 한 재심호계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등을 지낸 법인 스님은 불교계의 대표적 소신 인사다.
그는 16일 ‘94년 불교개혁 정신 실천을 위한 비상대책회의’가 서울 종로구 걸스카우트회관 강당에서 마련한 1차 토론회에서 “과거 80년대 온갖 부정부패와 집단 물리력 행사 속에서 저희 세대들은 수행자의 자괴 속에 환속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며 “고군분투해 종단민주화의 여력들이 꾸준히 모아졌고 그것이 분출된 것이 94년 개혁”이라고 말문을 뗐다.
그는 “지금은 한 티끌에 우주가 담겨있다는 표현을 부정적으로 쓸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당시 개혁 이후 책임 있는 단위에서 청정한 승가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번 사태가 누적된 종단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불교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도 이어졌다. 법인 스님은 “종교로서 불교는 무엇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아야’한다”며 “종단이 이처럼 반칙, 독식을 하면서도 밖으로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자를 보듬는 활동을 적당히 하려고 든다면 가장 영악스럽고 교활한 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단 지도부는 이번 일의 파장을 예상하면서도 ‘자신 있게 저질렀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며 "이번 반칙은 반드시 저지돼야 하며, 장기적으로도 모든 면에서 교리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깨어 있는 출가자와 재가자를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불교계 여러 단위에서 격앙된 반응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파사현정(破邪顯正) 하려고 할 때 일수록 미움이나 분노의 방식이 아닌 철저히 불교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며 “올바름으로 돌아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하기 위한 것이 이 모든 일의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18일 조계종 사법기구인 재심호계원은 서 전 원장이 “제대로 된 멸빈 통보를 받지 못했다”며 21년 만에 제기한 재심 신청을 받아들여 멸빈 징계를 공권정지 3년으로 낮춰 판결했다. 총무원이 판결을 그대로 수용해 행정적 절차를 이행 할 경우 서 전 원장은 조계종 승려로 돌아온다. 이에 “납득할 수 없는 재심판결의 문제가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는 스님, 재가자, 총무원 종무원, 94년 개혁주체들의 반발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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