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열망 실은 대륙횡단철도
서울-신의주 루트 막혀 아쉬워
北서도 손기정 긍정적 평가
외조부, 평화 메신저로 재조명됐으면
1936년 6월 4일, 24세의 손기정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서 출발하는 경의선 열차에 올라탔다. 그는 신의주, 중국 단둥, 하얼빈을 거쳐 소련 치타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갈아탄 뒤 독일 베를린까지 갔다. 보름 가까이 걸리는 고된 여정은 망국의 한이 맺힌 민족의 운명처럼 서럽고 고단했다.
시간이 맞지 않아 여객용 기차 대신 군 장비 수송용 화물열차 칸에 겨우 몸을 구겨 실을 수밖에 없었고, 장조림과 장아찌로 끼니를 버텼다. 손 선수는 열차가 석탄 연료를 채우기 위해 정차할 때마다 굳어진 몸의 근육을 풀기 위해 철도를 따라 뛰며 컨디션 조절을 했다고 생전에 출간한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에 적었다.
1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하바롭스크로 향하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시베리아 횡단열차 11호차. 짙은 어둠을 헤치고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열차 객실 안에서 고 손기정 선수 외손자인 이준승(48)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이 낡은 책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베를린올림픽 결과보고서 형태로 출간된 책자 겉 표면엔 ‘잘 보관할 것’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생전에 손 선수가 고이 챙겼던 자료였다고 한다. 이 총장은 “할아버지가 베를린으로 가던 길은 당시 세계 역사에서 지워진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계와 연결시키겠다는 도전의 길이었다”며 “이번 친선특급 여정 동안 조선의 독립과 승리에 대한 남다른 의지를 품고 이 길을 달렸을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되짚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손 선수는 올림픽 당시 우리 민족의 저력을 알리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이 총장은 “할아버지는 올림픽 출전 당일 외에는 일장기가 달린 유니폼 대신 양복을 입고 연습을 해서 다른 종목의 동료로부터 ‘그러다 선수 자격을 박탈 당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들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손 선수는 금메달을 획득한 뒤 일본이 주최한 축하연에 가지 않았고 대신 조선인들끼리 모여 조촐한 축하 자리를 가질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그토록 열망하던 해방과 동시에 분단된 지 70년 째, 대륙횡단철도망에서 한반도는 빠져 있다. 이 총장은 할아버지가 가로질렀던 서울 신의주 루트로 열차가 달리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했다.
그는 또 남북한 공히 민족 독립을 위해 애썼던 영웅들을 함께 기억하는 데서부터 분단 극복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북 신의주가 고향인 손 선수에 대해선 북한의 최고위층에서도 ‘독립의 자신감을 키워준 인사’라고 존중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고 한다.
“2007년 손기정마라톤대회 협의 차 평양에서 북한 체육계 인사를 만났는데, 김일성 주석이 회고록에 항일운동 시기 피신해 있었을 때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과 일장기 말소 사건 등을 보며 독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적었다고 하더군요. 북한에도 손기정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남아 있다고 해서 기뻤어요.” 그는 이어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남북관계가 빨리 좋아져 온전한 대륙횡단 철도를 달려 할아버지의 혼을 많은 국민들이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독일에 도착하면 이 총장은 베를린 주경기장에 있는 손기정 선수 동상 내용 수정도 요구할 계획이다. 지금은 ‘마라톤, 2시간 29분 19초, Japan’이라고 적혀 있는데 뒤에 ‘korean’을 덧붙여 달라는 것이다. 이 총장은 “이번 유라시아 여정이 일제 압제 시절엔 독립을, 분단 이후엔 남북 통일을 위한 평화 메신저로 남고자 했던 손기정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고 말했다.
하바롭스크=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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