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이자 비평가 에드몽 드 공쿠르(사진 왼쪽)가 1896년 7월 16일 숨졌다. 그는 앞서 간 동생 쥘 드 공쿠르(소설가ㆍ오른쪽, 1870년 별세)를 기려 “프랑스 문학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유산을 남겼고,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공쿠르 아카데미’가 1903년 공쿠르상을 제정했다.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하면 대개 1901년 첫 수상자를 낸 노벨문학상과 1969년 제정된 영국의 맨부커상, 공쿠르상이 꼽힌다.
공쿠르상은 상금이 짠(10유로) 상으로 유명하다. 상금이 적은 것은 아무래도 단점일 테지만, 돈으로 상의 권위를 사지 않고 액수로 수상의 명예를 치장하지 않겠다는 그 취지를 세계의 문학계는 존중해왔다. 물론 상을 수상하면 책이 많이 팔리고, 출판사와 작가는 거기서 수익을 얻는다. 아카데미 종신회원 10명이 수상작을 정하는데, 갈리마르 그라세 세이유 알벵미셸 등 대형 출판사 책들이 수상하는 예가 많았고, 남성 작가에게 상이 몰려 보수성과 공정성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공쿠르의 젠더 편향에 맞서 만들어진 게 페미나상이고 보수성을 우려해 탄생한 게 르노도상이다. 공쿠르상 제정 이듬해 만들어진 페미나상은 지금도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수상작을 정한다. 기자 비평가 등 10여명이 26년 만든 르노도상은 공쿠르상 발표 당일 발표 직후 바로 그 현장에서 수상자를 발표한다.
문학 독자들은 각 수상작을 비교 평가함으로써 상 자체를 평가한다. 여전히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공쿠르상의 권위 역시 저 보이지 않는 경쟁과 평가를 통해 100년 넘게 유지돼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 프랑스문학도 저 상들의 차별적이고도 경쟁적인 격려에서 큰 힘을 얻었을 것이다. 다수가 알만한 콩쿠르상 수상작으로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중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1919 수상)’,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1933)’ 지난해 노벨상을 탄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1978)’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1984)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위원회의 ‘2014 한국문예연감’에 따르면 2013년 현재 한국의 문학상은 총 390개다. 상이 너무 많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비아냥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판이라면 과다(過多) 자체보다는 상들의 몰개성과 무원칙을 꼬집는 것이고, 비아냥이라면 상을 주고받은 이들의 몰염치를 조롱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좋은 상에 대한 갈증의 탄식이기도 할 것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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