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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캉말캉 낯선 감촉, 걸음마다 살아나는 자유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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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캉말캉 낯선 감촉, 걸음마다 살아나는 자유의 감각

입력
2015.07.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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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순환 개선, 두통해소, 치매예방, 기억력향상, 소화기능개선, 당뇨예방, 피로회복, 불면증 해소. 뭐 이 정도면 돌팔이 약장수 뺨치는 ‘신비의 명약’이겠다. 대전 계족산 등산로에 세워놓은 ‘맨발걷기의 효능’안내판 내용이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자꾸 강조하면 사기꾼으로 몰리기 십상이니 그러려니 웃어 넘기자.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계족산 황톳길은 바로 그런 곳이다.

말캉말캉 자박자박 대전 계족산 황톳길 맨발걷기/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말캉말캉 자박자박 대전 계족산 황톳길 맨발걷기/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자박자박 폭신폭신 맨발 황톳길 14km

동네 뒷산 가더라도 유명 브랜드 등산복에 발목을 감싸는 등산화는 기본인 시대가 됐다. 등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인체공학적 기능까지 고려했다니 어느 정도 값어치는 하겠지만 지나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좋은 등산화도 휴식할 땐 한 번쯤 끈을 풀고, 될 수 있으면 두터운 양말까지 벗고 바람을 쐬어줘야 발과 몸에 생기가 돋는다. 이런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산책길이 계족산 황톳길이다. 지압길이니 황톳길이니 이름 붙이고 기껏 수 백 미터 맨발로 걸어보는 맛 배기와는 다르다. 장장 14.5km 전 구간을 완주하려면 넉넉히 하루는 잡아야 한다.

계족산(鷄足山)은 대전시내에서 멀지 않은데도 아늑하고 한적하다. 산세가 봉황을 닮았다고 봉황산으로도 부른다는데 그건 좀 과장된 듯하고, 산줄기 모양이 닭 발처럼 뻗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니 그 정도가 오히려 친근하다. 대전역에서 신탄진으로 가는 국도에서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넘으면 대덕구 장동마을이다. 두 개로 분리된 마을을 잇는 약 4km 남짓한 도로는 양쪽으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길이다.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산골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승용차 20여대 댈 수 있는 주차장도 아직 비포장일 정도로 관광지로서는 ‘촌티’를 벗지 못했다. 주차장에서 약 300m 걸어 장동산 산림욕장 관리사무소를 통과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맨발 황톳길이 시작된다.

서두르지 않아서(못해서) 더욱 좋은 길
서두르지 않아서(못해서) 더욱 좋은 길
시원한 그늘, 적당한 습도.
시원한 그늘, 적당한 습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유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유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임도(林道) 중 가장자리 일부에 황토를 깔아 맨발로 걷는 길을 만들었다. 딱딱한 흙이 아니라 차진 흙 길이다. 인류는 원시에서 너무 멀리 왔나 보다. 처음엔 누구나 주저한다. 한 두 사람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몇 발짝 내걷고서야 경계심이 누그러진다. 수 없이 많은 발자국이 스쳐갔지만, 적당한 수분에 두꺼운 밀가루 반죽처럼 탄력이 생긴 고운 황토반죽은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말캉말캉하다. 흔히 ‘땅에 두 발을 딛고 다닌다’고 표현지만, 일상에서 흙 바닥과 직접 접촉할 기회는 거의 없다. 조심스레 한발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에 부드러운 간지럼이 퍼진다. 조금 묽은 황토는 발가락 사이로 삐죽 빠져 오른다. 속옷을 입지 않은 듯 낯선 감각이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하고 익숙해진다. 나중에는 양말과 신발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린다. 자유의 감각은 그렇게 하나씩 버릴 때마다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원래부터 황톳길은 아니었다. 대전지역 대표 주류업체인 M사 대표가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2006년부터 황토를 깔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자연 유실되는 부분은 새로 황토를 더하고, 햇볕에 굳어진 부분은 뒤집고 부수어 물을 뿌린다. 그래서 구간마다 자박자박 폭신폭신 질감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길을 걷는 재미다. 여름엔 산행이 부담스럽기 마련이지만, 계족산 황톳길엔 그늘이 많고 일정하게 습도가 유지되지 때문에 오히려 걷기 편하다. 맨발이어서 땀에 젖고 숨이 찰 만큼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드러운 곡선과 맞닿은 하늘, 계족산성

황톳길은 8부 능선으로 산을 한 바퀴 돌기 때문에 정상에 오르려면 어쩔 수 없이 신발을 다시 신어야 한다. 입구에서 1.6km 지점에 계족산성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온다. 산성 자체는 크게 의미를 부여할 만한 유적이 아니다. 신라로부터 백제의 수도 웅진(공주)을 수비하는 요충지였다는 정도다. 백제성도 되고 통일신라시대성도 되겠지만, 복원공사가 너무나 깔끔해서 산성이라기 보다는 잘 쌓은 석축을 보는 느낌이다.

계족산성 정상의 소나무 한 그루
계족산성 정상의 소나무 한 그루
하산길은 잘 정비된 데크로
하산길은 잘 정비된 데크로

약 20분 가량 등산 끝에 도착한 성벽 정상은 의외로 아늑하고 시원하다. 서북으로 대전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반대편으로는 대청댐 호수를 멀리 조망할 수 있다. 의외라는 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장면 때문이다. 개망초가 하얗게 뒤덮인 평평한 성안에 크지 않은 소나무 두 그루가 외롭지 않게 산성을 지키고 있다. 살짝 곡선이 가미된 성벽과 하늘이 맞붙은 경계를 잇는 소나무가 한 폭의 그림이다.

다시 황톳길을 걸어도 좋겠지만 내려올 때는 지름길을 택했다. 흙을 밟고 걸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하산 길은 신발에 흙 한 톨 묻힐 일이 없을 정도다. 가파르지만 전 구간을 나무 데크로 깔끔하게 연결해 놓았다. 수직에 가까운 경사가 끝나는 곳부터는 계단 없이 완만해 노약자나 장애인이 이동하는데도 어렵지 않을 정도다. 시원하게 하늘로 뻗은 낙엽송과 군데군데 잎 넓은 활엽수가 짙은 그늘을 만들고, 그 아래로 분홍과 보라 빛을 오가는 수국이 한창이다.

대전=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여행메모]

●계족산 황톳길은 장동산림욕장이 출발점이다. 대전역에서 약 12km 떨어져있다. 대전역에서17번 국도로 신탄진으로 달리다 농수산유통공사 삼거리에서 장동방면으로 우회전 해서 고갯길을 넘으면 된다. 삼거리부터 ‘장동삼림욕장’안내표지판이 잘 돼 있다. 수도권에서 내려간다면 경부고속도로 신탄진IC를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황톳길을 걸으려면 따로 신발주머니를 준비하는 게 좋겠다. 중간중간 발을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있지만 계족산성 등산로 분기점에는 수도가 없다. 발 닦을 정도의 물을 준비하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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