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마약계 대부 킨테로 석방
美 강력 반발에 부담 느낀 멕시코
신병인도 불가 조건 체포설 확산
총격전 없이 수순히 붙잡혀
1.5㎞ 터널 17개월 만에 뚫고 탈옥
조직적 조력자 없이는 불가능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56)이 탈옥하자, 멕시코가 미국정부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구스만을 미국에 인도하지 않는 배경을 놓고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구스만이 멕시코 정부와 사전에 “미국에 신병을 인도하지 않는다”는 밀약을 맺은 후 체포돼 정부의 체면을 세워준 후 계획대로 탈옥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미국은 멕시코산 마약을 미국 남부지역에 공급해 온 사실을 근거로 구스만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멕시코에 꾸준히 요구해 왔다. 하지만 멕시코는 “구스만은 결코 탈옥하지 못할 것” “멕시코 인은 멕시코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며 이를 거부했다.
조직적으로 움직인 현장 상황
밀약설에 주목하는 전문가들은 먼저 현장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구스만은 지난해 2월 체포돼 알티플라노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 교도소 내 독방 샤워실에서 교도소 밖의 농가까지 1.5㎞에 이르는 터널을 불과 17개월 만에 뚫었다. 터널 크기도 높이 1.7m에 너비 70~80㎝나 되고, 환기구 및 조명 시설까지 갖췄다. 파낸 토사를 운반하기 쉽도록 개조된 소형 오토바이도 발견됐다. 잘 조직된 다수의 조력자가 없었다면, 구스만이 삼엄한 감시망을 피해 이 터널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했다.
구스만이 지난 2001년 푸엔테 그란데 교도소를 탈출했을 때에도 교도소장 등 10여명이 그의 탈출을 도왔다. 당시 그는 세탁 용역 차량에 숨어 정문을 빠져 나갔다.
왜 사전 밀약을?
사전 밀약 정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멕시코가 최근 마약 사범에 대한 미국의 압력에 부담을 느꼈고, 이를 무마할 만한 카드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멕시코는 2013년 8월 살인 등 혐의로 복역 중인 ‘마약계의 대부’ 라파엘 카로 킨테로를 돌연 석방했다. 킨테로는 미국 마약관리국(DEA) 요원을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40년 형을 선고 받고 1985년부터 복역 중이었다.
이에 미국은 강력 반발했고, 멕시코 정부는 뒤늦게 킨테로에 대해 체포령을 내리며 수습에 나섰지만, 여전히 그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미국을 달래기 위해 멕시코 정부는 마약계의 큰 손인 구스만에게 “미국에 신병을 인도하지 않을 테니, 잠시 들어와 달라”는 사전 협약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석연찮은 체포 정황
2014년 구스만 체포 당시 정황도 의문이다. 막강한 자금력뿐 아니라, 800여명의 무장 조직원과 수십 명의 개인 보디가드까지 거느린 그가 멕시코 서부의 작은 항구도시 마사틀란에서 별다른 총격전도 없이 순순히 붙잡힐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 구스만의 아들 중 한 명은 지난 5월 트위터에 “대장은 곧 돌아온다. 아버지가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DEA 요원인 필 조르단은 “멕시코 정부와 모종의 이면 계약이 없었다면 구스만은 붙잡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멕시코 주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 인도 안했다는 주장도
물론 멕시코 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자존심 때문에 구스만을 미국에 인도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이 더 많다. ‘멕시코 마약 전쟁의 간섭자’의 저자 실비아 롱마이어는 “전임 대통령이었던 펠리페 칼데론은 미국의 도움에 너무 의지한 나머지 멕시코 국민들은 그를 나약한 존대로 여겼다”며 “현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미국의 간섭을 배제한 채 주도권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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