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멍하니 있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다. 대체로 안 받는데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을 때가 있다. 무슨 잡신이 들렸는지 발신자의 성분(?)과는 무관하게 누가 왜 전활 했는지 확 감이 오는 까닭이다. 휴대전화 없이 사는 그. 발신번호가 누구의 것이든 난 이미 나갈 준비를 한다. 원고를 쓰는 중이든 여자와 데이트 중이든 내 상황은 별 따질 게 아니다.
나를 이렇게 만드는 사람은 드물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면 내 하찮은 일정 따위 다 무시해도 되고, 설사 내가 대장암이나 그 비슷한 참변(?)에 놓여 있더라도 부르면 가는 거다. 사는 동안 그럴 수 있는 사람 하나 있다는 건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행복이자 훌륭한 멍청함이라 여긴다. 나가봤자 별 건 없다. 그냥 그 사람 잘난 척인지 외로움인지 싶은 얘기 듣고 심장과 폐 사이쯤 어딘가 맺혀있을 더러운 어떤 걸 파바박 소리 내 뱉으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다 아파서 하는 말이고, 멍청해서 생기는 말이고, 고민해서 생긴 종양 같은 말일 텐데, 그렇게 다 던지고 뒤섞고 나면 나와 그는 다 옳고, 나와 그 아니면 다 바보 같아 보인다. 그 비슷한 생각으로 마주보며 깔깔대는 우리가 세상 최고의 바보라는 거 모르는 바 아니다. 막상 불러놓고 다 떠나서 우리끼리 남은 초저녁 종로 거리. 손 맞잡고 우린 대로를 걸었다. 다들 이상하게 보더라. 고마운 세상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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