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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어떤 스카프

입력
2015.07.1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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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 르 펜은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당수다. 또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극우’와 ‘페미니스트’의 조합은 당혹스럽겠지만, 그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진짜 페미니스트다. 미혼모이기도 한 그녀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성을 주장하는 보수파인 동시에 남성 중심의 질서를 비판하는 급진파 페미니스트이다. 때로는 임신중절을 선택한 여성들에게 당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위로와 지지를 보낸다. 팝스타 마돈나가 “그동안 르 펜을 오해했던 것 같다”며 만나기를 청할 정도다.

우리를 더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보수적 페미니즘이 아닌 급진적 페미니즘이 그녀의 극우정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르 펜은 철저히 약자-여성의 처지에서 반 이민을 선동한다. 이슬람교는 여성을 억압하고 굴종시키는 종교이며, 따라서 무슬림의 프랑스 이민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다. 여성의 자유와 독립성이라는 이념과 여성은 약자이니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곧장 이민자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그것이 특히 극단적으로 나타난 예가 2010년 지방의회 선거다. 일함 무사이드라는 이민자 출신 여성이 좌파 정당 NPA의 후보로 출마했다. 프랑스 정치계 전체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킨 사건이다. 무슬림 여성이 스카프를 쓰고 선거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민전선은 NPA가 여성을 억압한다며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스카프 착용이 억압적이라는 것이었다. 무사이드는 부르카(전신을 가림)도 히잡(머리와 목을 가림)도 아닌 그저 스카프를 썼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마치 NPA가 부르카를 강요하기라도 했다는 듯 거칠게 분노했다.

공격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그 해를 기점으로 NPA는 완전히 몰락했고 국민전선은 주류 정당으로 올라섰다. 무사이드는 여성운동가이며 스스로 스카프 착용을 선택한 것이라는 NPA의 해명은 소용이 없었다. 그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해명은 비겁한 변명이자 사과를 거부하는 뻔뻔함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사이드가 부르카를 입은 것은 아니잖느냐는 지적에 비난자들은 이런 식으로 응답했다. “우리가 유난스럽다고 하지 마라. 당신들은 여성이 일상에서 직간접으로 겪는 차별과 억압을 이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당신들은 반여성주의자들이다!”

극우정치는 비윤리가 아닌 과잉윤리에서 비롯된다. 과잉된 윤리의식을 타인에게 징벌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극우정치의 본질이다. 개인이 선택한 스카프에까지 여성 억압의 굴레를 씌우는 것이 그 예다. 그 스카프는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이나 억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 과잉윤리를 불러오는 것은 과거에 겪은 트라우마 경험이다.

심리적 상처는 이성적 판단을 억제한다. 국민전선의 여성 지지자들은 일상에서 겪는 차별과 억압의 원한을 NPA에 투사했다. 6ㆍ25전쟁을 경험한 일부 어르신들은 야당만 보면 빨갱이라고 한다. 전ㆍ의경으로 힘든 복무기간을 보낸 일부 청년들은 평화로운 집회만 봐도 치를 떤다. 이들의 심리적 메커니즘은 모두 같다. 트라우마 때문에 아무 관련이 없는 대상에게 분노를 쏟아 붓는다. 문제는 이들 모두 자신들의 판단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는 것이다. 약간의 반대만 접해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으로, 좌익용공 주장으로, 사회전복세력을 옹호하는 것으로 취급하며 거칠게 비난한다.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사회비평가인 나오미 울프는 “페미니스트의 얼굴을 한 파시즘”의 출현을 경고해왔다. 이는 여성의 처지에서 말하는 것이 항상 선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피억압자의 편에 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반대편이 정말 억압적인지를 매 순간마다 냉철하게 검토해야 한다. 2010년 당시 군중심리에 휩싸여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비난의 대열에 합류했다. 좌파와 지식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스카프 착용이 누구를 억압했는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걸 비난하는 게 피억압자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손이상 문화운동가ㆍ밴드 요단강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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