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 이후 마카다미아, 메르스 사태 땐 마스크 배포
여대 앞에선 화장품 샘플, 학원 근처에선 특강 쿠폰
캐릭터 스티커·아이돌 달력 등 인기 아이템 내걸어 매출 올려
대학생 정가영(여, 25)씨는 6월 말경 거리에서 나누어 주는 마스크 한 개를 호기심에 받아 들었다. 그 동안 식당이나 술집 홍보용 물 티슈와 사탕은 받아 봤지만 마스크는 처음이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비닐포장에 헬스클럽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메르스(MERS) 때문에 불황을 겪으면서 오히려 메르스 관련 아이템을 판촉물로 앞세우고 나선 점이 인상적이었다. “받아만 두고 사용하진 않았지만 꽤나 센스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는 정씨에게 과연 헬스클럽의 노림 수는 통했을까? 이색 판촉물 덕분에 긍정적인 이미지는 갖게 되었지만 헬스클럽 등록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사회 핫 이슈 공략하고
불경기 속에 허덕이는 동네 분식집이건 잘 나가는 대기업이건 판촉물을 돌리는 목적은 ‘매출 증대’에 있다. 일단 가장 ‘핫(Hot)’한 이슈를 공략하는 전략은 소비자의 관심을 쉽게 끌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실제로‘땅콩회항’사건 직후 업종을 불문하고 여기저기서 마카다미아를 나누어 주었고 메르스 사태 땐 마스크와 손 세정제가 인기 판촉물로 등장했다. ‘핫 이슈’까지는 아니더라도 날로 변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중간은 갈 수 있다. 보조 충전배터리 같은 스마트 폰 액세서리는 여전히 인기가 높고 여행 예능프로그램과 캠핑 붐에 힘입어 아웃도어 용품도 잘 나간다.
때와 장소를 가려서 주고
애써 준비한 판촉물을 배포할 ‘때와 장소’를 가리는 일은 아이템 선정만큼 중요하다. 판촉물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수록 더 큰 구매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대 앞에선 화장품 샘플을, IT업계가 모여 있는 판교역 주변에선 보안경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광경이야말로 알맞은‘때와 장소’를 선택하는 중요한 힌트다. 영어 학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역에서도 무료 점심식사와 특강을 선착순으로 제공하는 ‘런치앤런(Lunch & Learn)’ 프로그램이 매번 만원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선물을 받으려는 행렬의 길이와 구매효과가 항상 일치할 순 없지만 판촉물 자체의 인기가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해 이른바‘마리오 대란’을 가져온 맥도날드 해피밀 슈퍼마리오 세트는 1차 수량이 사흘 만에 동날 정도로 히트를 쳤다. 캐릭터 스티커를 모두 모으기 위해 빵 180개를 사 먹어야 하는 카카오 프렌즈 빵이나 치킨 프랜차이즈의 아이돌 달력도 소비자의‘득템욕구’를 자극한 덕분에 성공을 거뒀다. 돈 주고도 못 산다던 허니버터칩은 이제 캔맥주나 다른 스낵을 끼워팔기 위한 최고의 판촉물로 전향한 듯 하다. ‘인질 마케팅’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인기 아이템을 활용한 판촉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품보다 더 갖고 싶게 해
한편 프랜차이즈 본사가 판촉물 구입비용을 가맹점에 떠넘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한 치킨 업체는 이 같은 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데 이어 3월엔 2심에서 가맹점주들에게 손해를 배상 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자동차나 제약, 보험 등을 판매하는 영업사원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판촉물 전쟁에 떠밀리는 경우다. 15년 경력의 퇴직 보험 설계사 한모씨는 "판촉물은 모두 자비로 구입하는데 실적에 대한 압박 때문에 월급의 절반까지도 지출하고 있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또, "회사는 한 푼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택배 보내는 날' 을 지정해 설계사들에게 사은품 제공을 압박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시대를 풍미한 판촉물들]
1980년대 이전까지 판촉물의 개념은 희박했다. 한국판촉물휘장협동조합에 따르면 다방을 중심으로 재떨이나 통성냥 등에 상호를 인쇄한 것이 판촉물의 시초였다.
90년대 들어 생활필수품이 주목을 받았다. 수건이나 우산, 수저가 인기 아이템으로 등장하고 커피숍이나 당구장 등에서는 종이 성냥과 라이터를 꾸준히 만들어 돌렸다.
자동차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9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 열쇠를 보관하는 열쇠고리가 각광을 받았다. 특히, 야구글러브를 만들고 남은 가죽으로 제작한 가죽 열쇠지갑은 누구나 받고 싶은 선물이었다.
2000년대 들어 휴대폰이 대중화 되자 휴대폰 고리와 함께 전자파 차단용 금박 스티커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인터넷 보급으로 다양한 아이템을 접할 수 있게 되자 판촉물의 종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현재 국내에서 거래되는 판촉물은 약 2만여 종, 시장규모는 연간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가격대도 인터넷 기준으로 10원대 자석스티커부터 백만 원이 훨씬 넘는 도자기까지 천차만별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스마트폰 액세서리와 USB저장장치가 큰 성장세를 보였다. 수건이나 우산, 각종 사무용품은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디지털 잠금 장치 때문에 열쇠고리는 자취를 감췄고 금연 바람에 재떨이 선물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반인이 구매하기 어려울 만큼 희소성이 있거나 소장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좋은 판촉물이죠” 이벤트 기획자 유모(여, 41)씨는 “최근 들어 업체명이나 연락처 노출을 최소화 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판촉물을 주는 마음]
보험설계사 한 모씨(경력 15년, 퇴직)
판촉물을 돌릴 때와 안 돌릴 때 실적 차이가 크다. 아무래도 선물을 받고 나면 지인이라도 소개해 주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고객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다 보니 감자나 양파 같은 계절 채소나 모바일 쿠폰을 보내면 좋아한다. 월 보험료 2~3만 원짜리부터 200~300만원 이상의 큰 건까지 다양한 선물을 준비하는데, 잡지, 케이크, 장뇌삼, 골프채까지 모두 설계사 개인 돈으로 구입한다. 가끔 고객을 모시고 골프 라운드를 나가면 운동비용은 설계사가 부담하고 식사비용은 회사가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전 모씨(경력 5년)
1인당 40~50군데의 병원을 담당하는데 원장님들의 취향이 다양하다. 운동을 좋아하는 분께는 수건 같은 용품을, 학구파 원장님은 학회 소식이 담긴 잡지나 기고문을 드린다. 원장님 한 분 당 수 십 군데의 제약사를 상대하므로 우리 제품을 최대한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한번은 2층 구조의 약품을 소개하면서 층층이 쌓인 모양의 무지개 떡을 드리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판촉물은 부수적인 것이다. 영업사원이 제품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효능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남자직원들은 병원 시설을 직접 손 보거나 겨울엔 미끄럼 방지 테이프를 출입문 앞에 붙여 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판촉물을 받는 마음]
정 모(남, 24)씨
실용적인 물품 받으면 좋은데 상호나 광고 내용은 전혀 신경 안 쓴다. 음식점 쿠폰도 괜찮다. 쿠폰 소지자에게만 서비스를 주면 내가 특별한 손님이라는 느낌이 든다.
추 모(여, 25)씨
거리에서 나눠주는 볼펜은 대부분 품질이 나빠서 싫다. 화장품 샘플 받고 기분 좋았다. 교회 합창단이 거리에서 노래 부르며 판촉물을 나눠줬는데 한 번은 평상시, 한 번은 크리스마스였다. 전자는 당황스러워서 받지 않았고 크리스마스 땐 기분 좋게 받았다.
김 모(여, 26)씨
물 티슈나 핫팩은 유용하게 쓸 수 있어 좋다. 홍보문구는 무조건 작은 게 좋다.
정 모(여, 25)씨
사탕에 마취제 발랐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서 절대 안 먹는다. 부채나 물 티슈, 머리 끈 등 필요하지만 내 돈 주고 사기엔 아까운 것들 받으면 좋다. 저번에 샴푸 한 통 받은 적 있는데 ‘개이득’ 본 느낌이었다. 손 소독제나 화장 솜, 면봉 같은 것 받고 싶다. 집에 다 떨어졌거든...
김 모(여, 24)씨
판촉물이든 전단지든 아주머니들이 받을 때까지 밀어 붙이면서 억지로 건넬 때 짜증난다. 한 번에 전단지 두세 장씩 주는 것도 당황스럽다. 내 친구 하나는 안 받는다고 욕 들어먹기도 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그래픽=강준구기자 wldms4619@hankookilbo.com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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