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런 악역은 만날 수 없을 것 같더라.”오는 22일 개봉을 앞둔 영화 ‘암살’을 촬영한 배우 이정재(43)는“그 동안 해왔던 역할 중 최악의 악역”이라고 자신이 연기한 염석진을 소개했다. 두 얼굴의 임시정부대원을 연기한 그는 몸에 ‘불안’을 심었다. 체중을 15kg이나 줄였고, 위태로움을 눈에 담기 위해 촬영 전 이틀 밤을 꼬박 샜다고 했다. “돌아온 건 탈모다.”카리스마와 섹시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배우의 입에서 “피부과 탈모 상담”얘기가 나왔다. 만나보니 농담도 제법이다. 14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재는 “영화에서 청년 연기를 할 때 감독님이 꼭 입을 벌리고 연기를 하더라고 했다”고 말해 인터뷰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이정재가 출연한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무대로 친일파 암살 작전에 나선 독립군과 임시정부대원, 그들을 쫓는 살인청부업자 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정재와 함께 전지현, 하정우가 출연했다.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올 여름 충무로 블록버스터 중 하나다. 다음은 일문일답.
-체중을 많이 줄인 이유는?
“60대 노인 역을 해야 했다. 분장 테스트를 해봤는데 어깨라든가 팔, 목 부위가 분장을 해도 젊어 보이더라. 방법이 없어 체중을 줄였다. 78kg이었는데 63kg까지 뺐다. 남들 밥 먹을 때 난 야채로 해결했다. 촬영 끝나고 동료 배우들이 맥주에 양꼬치를 먹을 때, 난 물에 야채를 먹었다. 그게 정말 어렵더라.”
-촬영하며 제일 힘들었던 신은 뭔가?
“60대 연기다. 청년 역은 겪어봤으니 가늠이라도 할 수 있는데 노인은 내가 아직 돼 본 적이 없어 상상만으로 해야하잖나. 연기도 연기인데 60대 분장을 하는 것도 어렵더라. 70대 이상이면 얼굴에 주름도 깊고 라텍스로 된 마스크를 쓰고 특수 분장을 하면 되는데 60대는 주름도 덜하고 특수분장으로는 자연스럽게 표현이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 분장하고 준비하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
-1,000만 관객을 바라보고 찍은 영환가?
“난 캐릭터에 욕심이 났다. 앞서 해보지 않았던 배역이었다. 물론 흥행에 욕심은 난다. 그런데 제작 투자 한 분들 입장에서는 1,000만 관객이 들어도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것 같더라. 2년 동안 준비한데다 제작비(180억 원)가 워낙 많이 들었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이 그만큼 높기도 하고. 상황이 이래 ‘도둑들’보다 더 ‘손익분기점은 넘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영화 예고편을 보니 감독이 하정우가 출연한다면 “목숨 걸고 쓰겠다”고 했는데 서운하지 않았나?
“그러게 말이다. 난 이렇게 만들어놓고.(웃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극중 염석진이란 인물에 대한 여운이 쉬 가시지 않았다. 인물이 지닌 감정이 세게 다가왔다. 더 나아가 ‘그 때 우리가 살았던 얼굴’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그래서 애정이 갔다.”
-이틀이나 잠을 안 자고 촬영했다고 하는데?
“힘들더라. 목소리도 다운되고. 캐릭터를 위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에너지를 소진한 뒤에 나올 수 있는 내 몸짓과 아이디어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다 쓰러질 수 있다는 걱정은 안 됐나?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 몰랐는데 체중을 많이 줄이면 머리카락이 빠진다더라. 피부과에 갔는데 ‘다이어트 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연관검색어가 탈모’라고 알려주더라. 탈모 때문에 체중 감량을 포기하고 싶더라.”(웃음)
-하정우 전지현과의 호흡은 어땠나?
“놀라운 배우들이다. 하정우는 표현력이 좋다. 그 친구만의 집요함이 있다. 전지현은 안옥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에서 그 무게를 잘 소화해줬다.”
-‘하녀’ ‘관상’ 이어 ‘암살’까지 악역이 연기에 대한 몰입을 높였다.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악역은 별로 안 들어온다. 10편 중 1편 꼴이랄까. ‘관상’은 내게 특별한 케이스였다. ‘하녀’는 임상수 감독을 워낙 좋아해 한 우정 출연이었고. ‘암살’은 배우로서 연기가 도드라져 보일 수 있는 작품이라 믿었다. 감독의 나에 대한 신뢰가 커 꼭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기도 했다. 또 다른 출연이유는 이름 없는 독립군들의 얘기를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끌렸다. 우리 시대가 낳은 하나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멜로 욕심은 없나?
“요즘 멜로 영화 시나리오가 씨가 말랐다. 코미디 영화는 자신 없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간간히 들어오더라.”
-차기작은?
“한중합작영화인 ‘역전의 날’이다. 곧 촬영한다. 석 달 반 정도 찍을 것 같다. 첫 중국 영화 출연이기도 하다. 리쥔 감독이 내 영화를 많이 봤고, 이 작품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더라. 짜임새 있는 영화라 출연을 결정했다. 요즘 많은 배우들이 중국에서 작업하잖나. 정우성은 이미 1990년대에 가서 찍고 왔고. 나도 한 번 경험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세계2’는 언제 찍나
“박훈정 감독이 너무 바쁘다. ‘대호’를 찍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올해 ‘신세계2’ 촬영을 어려울 것 같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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