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여부를 가를 17일 삼성물산 임시주총을 앞두고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사이에 유례없는 대국민 여론전이 벌어지고 있다. 각종 매체를 뜨겁게 달군 홍보전에서 삼성의 호소는 주주와 국민에게 합병을 지지해달라는 것이고, 엘리엇의 주장은 그 반대다. 양측의 목표는 단순하다. 주총에서 각각 합병 찬ㆍ반 정족수를 확보하는 것이다. 양측 모두 합병을 관철할 출석 주식 3분의 2나, 무산시킬 3분 1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약 24%의 지분을 가진 소액주주를 우군화하기 위한 호소에 여념이 없다.
어찌 보면 민간기업의 계열사 구조조정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다. 그런데도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이번 다툼에는 단순한 주주의 이해를 넘어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부터 외국 ‘먹튀 자본’의 행태, 기업의 장기적 가치와 단기 이익을 앞세우는 주주자본주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기업경영을 둘러싼 사회적 의제가 망라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대한민국 대표기업인 삼성의 미래 경영이 주가 차익만을 노린 외국 투기자본의 ‘작전’에 휘둘려서야 되겠느냐고 호소한다. 글로벌기업이기에 앞서, 이 땅에서 대부분의 가치를 생산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국적기업으로서 일종의 산업민족주의를 환기하려는 뜻이다. 아울러 단기이익을 나눠먹는 데만 골몰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도살했던 월스트리트 식의 실패한 주주자본주의를 추종할 거냐, 아니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선택을 할 거냐는 물음을 주주들에게 던지고 있다.
삼성의 호소는 틀리지 않다. 엘리엇은 줄곧 주주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는 ‘정의의 사도’처럼 행세해왔다. 최근에는 회장이 2002년 월드컵 때 방한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한국을 응원했던 사진까지 내세우며 애써 ‘친구’임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본질은 단기수익만이 최우선인 냉혹한 외국자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경영이 투기자본의 얄팍한 농간에 흔들리기에 이른 건 3세 승계과정을 포함한 삼성 총수 일가의 원죄와 무관하지 않다.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엘리엇의 주장에 동조하는 국내 일각의 주장처럼 삼성의 경영권 승계과정 등에 윤리적 문제가 있는 건 맞다. 사회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과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 아무런 책임도 없는 일개 투기자본에 편승해 삼성을 단죄하겠다는 건 어리석다. 우리는 삼성에 회초리를 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솔로몬의 재판에 비유하면, 엘리엇은 삼성이 죽어도 좋다는 가짜 엄마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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