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대가야읍 주산성서 확인
땅에 나무상자 넣고 점토 채워
양국 동맹 맺은 6세기 중엽 건설
저온에 음식 재료 보관 추정
대동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 중인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주산성(사적 제61호) 내부에서 백제 축조기술로 지은 가야 최초의 대형 목곽고(木槨庫ㆍ목재 저장시설)가 발견됐다. 백제와 대가야가 신라에 대항해 동맹을 맺었던 6세기 중엽에 건설된 것으로, 이 시기 백제와 가야의 밀접한 관계를 증명하고 있다.
대형 목곽고는 땅을 파낸 구덩이 안에 나무상자를 세우고 주변을 점토로 채워 보온ㆍ보습ㆍ방수효과를 내도록 설계됐다. 전체 구덩이 크기는 가로ㆍ세로 각각 8m, 깊이 3.5m 정도이며, 나무상자는 구덩이 바닥에서 1.2m 정도 높이에 설치됐다. 나무상자 자체의 크기는 가로ㆍ세로 각각 5m, 높이 약 2m다. 두께 약 20㎝의 목판을 바둑판처럼 짜맞춰 목곽고 바닥을 만든 흔적도 발견됐다. 목곽 주변은 모두 점토로 채웠고 전체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돌담을 쌓아 점토를 보호했다. 발굴단은 이 목곽고가 음식재료를 오래 보관하기 위한 저온 식자재 저장고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주산성의 목곽고와 유사한 구조의 저장고 중 대표적인 것이 2014년 9월 발굴된 공주 공산성의 목곽고다. 이외에 대전 계족산성, 이천 설성산성, 금산 백령산성, 대전 월평동 유적 등지에서도 백제 목곽고가 발견됐다. 주산성 목곽고의 각종 길이를 분석하면 축조 당시 도량형이 6세기 백제에서 사용한 남조척(南朝尺?1척=25㎝)으로 추정되는데 이 역시 대가야와 백제가 밀접하게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번 목곽고 발굴은 신라 병합 직전 대가야의 정치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대가야는 6세기 빠르게 팽창하던 신라에 대항하기 위해 백제와 동맹을 결성했으며 6세기 전반에 신라에 대항하기 위해 주산성을 축조했다. 주산성 남쪽에 있는 지산동 고분군 중 일부 무덤과 동남쪽 고아리 벽화고분 등에서 백제 양식의 굴식 돌방무덤이 나타나는 것도 이 시기 백제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최재현 대동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과장은 “역사 기록이나 고분 외에 실제 사람들이 생활했던 곳의 유적에서도 대가야의 역사적 상황을 추론할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목곽고의 폐기과정은 대가야의 멸망 과정을 반영한다. 대가야와 백제의 동맹은 554년 백제ㆍ가야ㆍ왜 연합군이 신라와 싸운 관산성(管山城ㆍ현재 충북 옥천군) 전투에서 패하면서 크게 위축되고 562년 대가야는 신라에 완전히 병합됐다. 목곽고 발굴 과정에서 최초 폐기층의 바닥에 소토(燒土ㆍ불에 탄 흙)와 목탄의 흔적이 나타났고, 6세기 말 신라 양식의 짧은 굽다리 접시가 출토됐는데, 대가야를 멸망시키며 신라가 이 목곽고를 불태웠다는 뜻이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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