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은 둘 이상의 단체, 조직, 나라 등을 하나로 합치는 것을 뜻한다. 나라들 간의 합병은 합방이라고 하고, 힘이 센 국가가 다른 약한 국가의 영토나 주민을 강제적으로 합치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 병합(annexation)이란 말을 쓰며, 합치는 일을 먹어 삼키는 일에 비유하는 단어로는 병탄(倂呑)이 있다.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조약의 공식 이름이 바로 ‘한일병합조약’이다.
병(倂)이란 한자어는 구조적으로 보아서 ‘인(人)+병(竝)’의 꼴을 하고 있고, 또 ‘병’은 두 개의 입(立)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입’의 갑골문자는 ‘큰 사람’(大)이 땅 위에 서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 병(倂)이란 글자에는 사람을 뜻하는 의미소가 세 개, 그리고 땅을 뜻하는 의미소가 두 개 들어가 있는 셈이다.
합병하다란 뜻의 영어 동사 ‘merge’는 라틴어 ‘mergere’로부터 나왔는데 이 라틴어 동사의 뜻은 ‘담그다, 적시다’라고 한다. 기업들 사이의 인수합병을 영어로는 M&A(mergers and acquisitions)라고 하는데, 한자어와 영어 단어를 비교해 볼 때 서로 순서가 바뀌어 있는 게 묘하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의하면, 인수는 하나의 기업이 다른 기업의 경영권을 얻는 것이고, 합병은 둘 이상의 기업들이 하나의 기업으로 합쳐지는 것이라고 한다. 인수와 합병은 인지심리적으로든 법적으로든 서로 다른 개념임에 틀림없지만 실제로 행해지는바 인수와 합병 사이의 경계는 상당히 애매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는 제헌절에 중요한 투표가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승인에 관한 이 두 회사의 주주총회가 그것이다. 이번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 그룹 전체에 대해서 행사하는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만든다는 문제와 연관해서 극히 중요하다. 삼성물산은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4.1%)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반면에 제일모직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19.3%)을 통해서만 우회적으로, 그러니까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7.6%를 통해서만 그럴 수 있었다. 바로 그런 구조적 한계가 이번 합병의 배경이다. 이번 합병은 제일모직이 신주를 발행해서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제일모직(옛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는 이재용 부회장이다(23.9%).
이번 합병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인데 그것은 1:0.35다. 즉, 대략 제일모직 주식 하나와 삼성물산 주식 셋이 서로 맞교환되는 셈이다. 이 합병 비율은 현행법에 의거해서 적법하게 산출된 것이라고 삼성 그룹에서는 주장한다. 합병 결정 직전의 주가 시세에 의해서 그 비율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세계 최고의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에서는 1:0.95의 합병 비율이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삼성물산의 자산가치(소유한 주식 및 부동산 등을 합한 가치)가 제일모직의 자산가치보다 대략 3배 정도 크다는 게 그 주장의 근거다.
얼마 전 국민연금은 이번 합병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초보적 회계 계산에 의거한다면, 국민연금의 자산을 불리는 데는 ISS의 합병 비율 쪽이 훨씬 더 유리하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지분율 11.61%)과 제일모직(지분율 5.04%)의 주식 모두를 갖고 있다. 내 거친 계산에 의하면, 1:0.95의 비율은 1:0.35의 비율과 비교해서 최소한 대략 6,000억원 이상의 가상적 자산을 국민연금에게 안겨 준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합병 무산이 야기할 수 있는 후유증을 피하기 위해서 이재용 부회장을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일제의 한반도 병탄과 관련해서, 일본 측은 한일병합조약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반면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그것이 합법적이지도 않았다고 반박해 왔다. 병탄의 합법적 형식 여부에만 매달리는 것은 식민지 침략이라는 본질을 놓치게 되기 마련이다. 현재로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삼성 그룹은 기업 지배권의 사회적 정당성과 기업 경영의 사회적 책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만 한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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