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 불구 증인 출석 등 신변 노출 못 막아
보호조치도 신고자 스스로 챙겨야… '제3자 통한 제보' 도입 목소리 커져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제보를 했을 뿐인데 법원 증인신문 과정에서 신변을 보호받고 있단 느낌을 못 받았어요. 피고인의 한숨 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고 피고인의 변호사가 ‘당신이 제보했잖습니까’라고 다그치는 상황에서 내가 죄를 지은 듯한 압박감을 받았습니다.”
정부 부처 한 공무원의 비리를 제보한 A씨는 최근 법원의 증인출석 요청에 응했다가 마치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제보를 하고도 위축된 상황이 마치 성폭력 피해자 처지 같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A씨도 직접 제보를 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제3자를 통한 제보 방법을 강구했다. 하지만 그럴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았고, 결국 ‘이건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이후 A씨의 제보로 해당 공무원은 뇌물 수수 혐의로 법정에 섰다. 제보자인 그 역시 증인석에 서야 했다.
A씨는 법원에 증인보호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이 때문에 피고인과 직접 대면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심리 과정에서 A씨의 신변보호를 위해 법원이 준비한 것은 피고인과 약 1m 거리를 두고 설치한 가림막이 전부였다. A씨는 가림막 뒤에서 피고인의 한숨 소리와 변호사의 다그침, 피고인 가족의 원망 어린 시선 속에 2시간가량 벌벌 떨어야 했다.
공익신고자가 여전히 떨고 있다. 현재 공익신고자 보호법과 부패방지권익위법이 공익신고자 보호규정을 담고 있지만, 공익신고자의 신변노출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국회는 이달 초 공익제보의 인정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공익신고자 보호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공익신고자 신변노출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제도 개선은 이번 개정안에 담기지 못했다. 현재로선 부패방지권익위법이 규정한 신변보호 규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법 제64조는 신고사항을 이첩받은 조사기관 등은 신고자의 동의 없이 그 신분을 밝히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 보복의 위험이 크면 진술서 등을 작성할 때 인적사항 등을 기재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 특정범죄신고자 보호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사기관의 내부감사 등을 통해 신고자나 제보자 신분이 100% 드러나는 게 현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A씨 경우처럼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할 경우 비록 당사자와 대면은 막을 수 있더라도 변호인 또는 방청객을 통해 신분이 노출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법원 관계자는 “제보자가 보호프로그램을 신청하는 경우 화상시스템이 마련된 증인실에서 질문을 받게 하지만 법원 시설에 한계가 있어 차단막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제보자가 재판이나 수사기관에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출석하는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장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부패방지권익위법 제64조 2항에는 신고자가 신변의 위협을 느낄 경우 권익위 등에 요구해 경찰의 신변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이는 전적으로 신고자가 스스로 챙겨야 할 몫이다. A씨 역시 법원의 증인출석 전 권익위나 법원으로부터 증인보호프로그램에 대한 어떠한 설명이나 조언도 먼저 듣지 못했다. 한 공익제보자는 “신분이 노출돼 불이익을 받을 경우 구제해주는 법은 있어도 신분 노출 자체를 막아주는 장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올 초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도 제기됐던 ‘제3자를 통한 제보’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당시 변호사와 같은 제3자를 통한 제보는 허위 제보 우려 때문에 국회나 국민권익위원회의 반대로 도입이 무산됐다. 이정주 서울시립대 반부패연구소 연구위원은 “공익제보를 위해선 익명성이 중요한데 현재 익명성 부문에선 제보자들이 보호를 받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제3자를 통한 제보를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은 “변호사를 통해 제보를 할 수 있게 한다면 제보자의 신분이 비밀로 보장되는 데다, 변호사의 법률검토를 거치게 돼 오히려 제보자의 표적ㆍ허위 신고가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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