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 협상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회의가 밤샘 마라톤 회의로 이어지진 배경에는 유로그룹이 예상보다 훨씬 강도 높은 개혁안을 내놓아 그리스가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정부 관계자는 13일 유로그룹의 제안에 대해 국제채권단이 그리스 정부의 재정정책을 좌지우지할 우려가 크다며 “매우 나쁜 제안”이라고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AFP, AP 등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채권단의 요구사항 중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참여와 ▦500억유로 상당의 그리스 국유자산을 국외 민영 펀드에 담보 형식으로 묶어두었다 추후 매각하는 요구에 대해 끝까지 수용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최종 개혁안의 전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가 12일 합의한 개혁안 초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그룹이 채택한 합의문은 구제금융 협상 개시를 조건으로 12개 개혁법안에 대한 입법절차를 15일까지 끝내라고 요구했다. 주요 개혁법안은 ▦부가가치세 간소화 ▦과세기반 확대 ▦연금체계 지속 가능성 ▦그리스 통계청 법적 독립성 보장 ▦재정지출 자동 중단 실행 ▦송전공사 민영화 ▦부실채권 처리 ▦그리스 민영화기구 독립성 강화 ▦행정부문의 정치 간섭 배제 등이다. 합의문은 또한 그리스에 단체교섭 축소 등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와 시장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그리스가 합의문에서 특히 크게 반발한 것은 독일 재무부 문서를 통해 공개된 요구조건이었다. 독일은 500억유로 규모의 그리스 국유자산을 룩셈부르크로 옮겨 독립적 펀드로 설정하고, 이를 매각해 부채를 상환하는데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며, 결국 유로그룹 합의문에 포함됐다.
또 유로그룹은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 프로그램 개시의 요건으로 그리스 정부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리스 정부가 약속한 개혁 조치를 성공적으로 이행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구체적인 일정과 목표 등을 설정하라고 요구했다.
유로그룹은 그리스에 강력한 개혁안과 시행 의지를 보이라고 압박하는 데 이어, 구제금융을 제대로 사용하는지 직접 감독하겠다고도 나섰다. 유로그룹은 3차 구제금융이 시행된다면 채권단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등 ‘트로이카’의 실사와 자문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의문은 또 그리스의 부채를 만기 연장 등으로 경감만 제안하고, 원금을 탕감하는 헤어컷은 거부했다. 합의문은 유로그룹이 지난 2012년 11월 채택한 부채 경감 약속에 따라 그리스의 부채가 지속가능한 수준이 되도록 만기 연장과 상환 일정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채무 재조정은 그리스가 개혁안을 모두 이행해야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한편 독일의 제안으로 이번 협상이 결렬되면 그리스는 한시적으로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그렉시트 협상을 요구 받게 될 것이라는 항목이 있었으나, 그리스와 프랑스의 거센 반발로 최종 합의안에서는 삭제됐다.
유로그룹은 또한 구제금융 규모를 820억~860억 유로로 추정했다. 이는 ESM 외에도 IMF가 2차 구제금융에서 지급하지 않은 160억 유로가 포함된 수치로 추정된다. 유로그룹은 그리스의 유동성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언급하면서 ECB에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20일까지 70억 유로를 긴급 지원해야 할 것으로 판단했다. 아울러 ESM 협상의 타결 목표시점으로 추정되는 다음달 중순까지 추가로 50억 유로가 필요할 것으로 진단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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