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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녀들과 밥

입력
2015.07.1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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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해주시는 음식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이가 미술학원에서 이런 질문지를 받았다. 물론 남의 집 식생활을 조사하거나 연구하기 위해서일 턱은 없고 그 음식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 아이는 이렇게 썼다. ‘사과’. 과일 말인가?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그 동안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들이 얼마나 많았느냐고, 네가 맛있다던 그것들을 설마 기억하지 못하는 거냐고 아이에게 항의 아닌 항의를 했다. 아이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자신은 정말 사과를 좋아하고 사과를 그리고 싶어서 그렇게 적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날의 느낌은 80%의 죄책감과 20%의 배신감을 뒤섞은 감정으로 묘하게 변형되어 가슴에 남았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집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조금만 기다려’와 ‘이따가 해줄게’가 아닐까 새삼 반성도 했다. 그 앞에는 하나의 공통된 문장이 생략되어 있으니 ‘엄마 바쁘니까’가 그것이다.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나는 언제나 바쁘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늘 허덕이며 산다고 느낀다. 아침 일찍 출근했다 저녁 늦게 퇴근하는 풀 타임 ‘직장 맘’보다는 덜 할지 몰라도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육아를 하는 입장에는 또 그만큼의 애로사항이 있는 것이다.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 시간이 도무지 맺고 끊어지지 않는다. 직업을 위해 일하는 시간과 가사노동의 시간, 그 외 나머지 시간들이 자꾸 뒤섞인다.

얼마 전 재미있게 읽은 ‘타임 푸어’라는 책 표지에는 폐부를 찌르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 ‘왜 해도 해도 할 일이 줄지 않을까?’ 워싱턴포스트의 ‘유능한’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라는 저자 브리짓 슐트의 프로필을 읽으며 혼자 씩 웃었다. ‘두 아이’와 ‘엄마’ 사이에는 유능하다는 가치 평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능한 기자이자 유능한 엄마라는 소개가 있었다면 나는 그녀의 책을 그토록 뼈아프게 공감하며 읽지 못했을 것이다.

오래 전 대학원생이었을 때 명망 있는 여자 교수님이 계셨다. 당시 그 분은 초등학생 자녀들을 두고 계셨는데 장을 볼 때면 아이들이 직접 껍질을 벗겨 먹을 수 있는 귤이나 바나나를 주로 사게 된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던 20대의 나는 아이들에게 감정이입을 하여 어머니가 직업적으로 성공을 한다는 게 자녀들에겐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직장으로 집으로 그리고 그 틈새에 시장으로 동동거리며 뛰어다니는 한 중년 여성의 바쁜 삶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요즈음,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한식 조리법을 쉽고 요령 있게 알려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덩달아 ‘집에서 만들어 먹는 밥’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도 많다. 모두들 ‘밥’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나는 자꾸만 다른 데에 마음이 간다. 그런 논의에서 ‘한때는 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여기 있었으나 지금은 멀리 있거나 부재하는 엄마’의 자리가 상정되곤 하는데 그 엄마(들)는 정말 거기 있었을까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랬다면 식구들을 위해 하루 세끼 밥을 차려내고 치우는 그 티 안 나는 일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 때문에 포기한 생의 다른 가능성은 없었을까, 또 직업적 이유 등으로 밥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어떤 그녀들은 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을 떨치지 못하는가 하는 것들이 말이다.

‘사과’라고 적힌 아이의 답지를 다시 펼쳐본다. 어, 그런데 질문이 내 기억 속의 것과 달랐다. ‘집에서 먹는 음식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은 무엇인가요?’가 정확한 물음이었다. 내 안의 무엇이 ‘집에서 먹는’을 ‘엄마가 해주는’으로 오독하게 했을까? 그게 그거라고? 아니다. 내 죄책감은 한층 엷어졌다. 어떤 날에는 그 정도만으로도 조금 위로가 된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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