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제목은 심보선의 시 ‘웃는다, 웃어야 하기에’에서 따왔다. ‘웃어야 한다’는 당위가 배면에 있고, 그렇기에 불가피하게 웃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읽히는데, 그렇게 웃는 웃음이 그다지 유쾌할 리 없을 거다. 물고 늘어질수록 지리멸렬뿐인 현실에 대한 일종의 거리두기일 수도 있다. 진지하게 따지고 울분에 차 분노하면 뭐 하겠나, 그저 쓴웃음 한방으로 버티겠다는 심중도 읽힌다. 그래, 만사 열렬해져 봤자 뭐 뾰족한 해갈이 있을까 싶어 나도 친구 따라 해 본다. 논다, 놀 수밖에 없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는 것에 많이 인색하고 서툴다. 출세지향적인 교육체계 탓에 몸도 마음도 뻣뻣해진 탓일 게다. 그럼에도 놀고 마시고 지분거리는 유전자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나이 먹고 성공한 다음엔 어릴 때 못 푼 회포라도 풀려는 듯 제대로 놀아보려는 사람도 많다. 허나, 멋들어지게 노는 어른을 보긴 힘들다. 점잖은 어르신의 눈꼴사나운 취중 추태나 잔뜩 일그러진 배꼽 아래 추문뿐이다. 그게 마뜩잖아 대학생들을 만나면 너무 열심히 살지 말고 어릴 때 실컷 놀라고 부추긴다. 그럴 때 학생들 눈빛이 기묘하다. 놀라고 꼬드기는 ‘꼰대’는 처음 본다는 표정. 그래도 어쩌겠는 가. 놀고 나서 머리를 비우고 들여다본 책갈피에 삶의 팔 할이 담겼다고 믿는 철부지 어른의 지론인 것을.
논다, 놀 수밖에 없기에. 재미는 저 하기 나름이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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