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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티렉스] ‘무한도전’은 어떻게 음원깡패가 됐나

입력
2015.07.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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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주년을 맞은 장수 프로그램,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최상위권,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 역사상 최강의 팬덤을 형성한 프로그램. 이런 프로필을 생각해 보면, 이제 ‘무한도전(MBC)’을 두고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자들의 이야기’를 운운하는 건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일이다.

‘무한도전’을 재미있게 즐겨 보는 이유는, 이제는 출연자들에게 너무 정이 들어버려서. 그리고 함께 나이 먹어가는 느낌이 들어서라는 게 제일 크다. 그리고 뭘 해도 늘 호감이 가는 유재석이라는 중심 캐릭터, 그러면서 아직도 ‘무한도전’을 볼 때면 ‘저기 나오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가 맞다’라는 자기최면 같은 걸 걸면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한도전’이 거대한 권력처럼 보일 때가 있다. 2년에 한 번 가요제를 할 때다. 돌이켜 보면 2007년 ‘강변북로 가요제’라는 이름으로 첫 가요제를 했을 때는 뭔가 허술하고 빈틈이 많아서 너무 웃긴데, 또 그 와중에 노래 듣는 재미는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후 2009년 ‘올림픽대로 듀엣 가요제’에서 나온 노래들이 음원 차트를 휩쓸어버리기 시작하더니 2011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와 2013년 ‘자유로 가요제’ 때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무한도전’이 슈퍼 갑 위치에 있고, 웬만한 가요 프로그램엔 잘 나오지도 않는 쟁쟁한 가수들이 ‘무한도전과 친해지고 싶어요’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등장한 것 같은 불편함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무한도전' 가면무도회 편. 방송화면 캡처
'무한도전' 가면무도회 편. 방송화면 캡처

올해 ‘가면 무도회’라는 제목으로 가요제의 프리퀄 형식의 이야기들이 나왔을 때, 물론 너무 웃기다며 깔깔거리고 보긴 했다. 하지만 가요제 자문위원단으로 이적, 유희열, 윤종신이 앉아있고 올해 출연진으로 박진영, 윤상, 자이언티, 아이유, 밴드 혁오, GD&태양이 나왔을 땐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저 사람들을 한 번에 섭외하는 게 가능했을까. (이건 거짓말이야, 하는 정도의 느낌) 요즘은 웬만한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도 대형기획사 간의 알력다툼이니 뭐니 하는 문제로 삐걱대는 소리가 나온다. 어떤 쇼 프로그램에서도 저 정도로 다양한 장르, 다양한 소속사, 다양한 인기 스타와 실력파들을 골고루 모아놓지는 못 한다. 자문위원단 3명과 올해 출연진 6팀이 한자리에 앉아있는 그림은 ‘무한도전 가요제’가 현재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가장 큰 ‘권력’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같았다.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과거에 나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음반을 사고 노래를 들었는지 생각해 봤다. 중-고등학교 때는 선배 언니-오빠의 조언이 일단 결정적이었다. 음악 좀 듣는다는 선배의 추천이 있으면 당장 레코드 가게로 갔다. 용돈이 좀 있을 땐 CD로 샀고, 돈 없을 땐 테이프를 샀고, 그마저 안 되면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나오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공테이프에 녹음을 했다.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DJ가 추천해 주는 노래에도 귀를 쫑긋 기울였다.

지금 뭐가 달라졌나를 생각해 보니, ‘이 노래 요즘 괜찮아’라고 권해주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라디오에서는 매일 만담 비슷한 이야기만 흘러나온다. 그래서 노래만 들으려고 스마트폰에 있는 음원사이트에 자주 접속하긴 하지만, 인기곡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어서 뭐가 뭔지 어리둥절 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냥 틀어놓고 듣다가 다음날 또 새로운 노래를 듣다 보니 몇 달 전 인기곡도 가사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좋은 노래 권해주던 언니 오빠? 요즘은 다들 자기 먹고 살기 바쁘다.

‘무한도전’은 그런 면에서 볼 때, 현재 남아있는 가장 강력한 DJ다. 무한도전 가요제에 나오는 뮤지션들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대중음악인들이다. 지디&태양, 박진영처럼 대중적으로 강력한 인기를 누리는 스타도 있고, 밴드 혁오처럼 음악성은 뛰어나지만 대중적이지 않았던 팀도 있다. 자이언티처럼 음원 차트에선 강자로 군림하지만, 정작 방송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고루고루 차려놓고, ‘무한도전’ 멤버들처럼 파트너를 예능적으로 살려주는데 최고의 스킬을 갖고 있는 예능인들까지 붙여준다. 듣고 싶지 않아도 자동 조건반사처럼 그 노래를 찾아 듣게 된다.

사람들이 대중가요를 대충 건너뛰고 외면하면서 사는 것 같아도, 기성세대건 어린 세대건 모두가 좋아할 만한 ‘국민가요’에 대한 갈증은 늘 있었나 보다. 그런데 가요계와 방송이 대형 기획사와 아이돌 위주로만 돌아가고, 좋은 음악 추천해 주는 스타 DJ 역할은 아무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한도전’이 그 갈증을 풀어준 셈이다. ‘무한도전’이 가요제를 할 때마다 ‘음원깡패’가 되고, 심지어 1990년대 가수들 모아놓고 한바탕 놀아보자는 컨셉트로 만들었던 ‘토토가’조차도 음원 차트에 90년대 히트곡을 줄 세워 놓는 핵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의 가요제는 이제 왠지 불편하다. 그런 역할을 해 주는 게 왜 ‘무한도전’ 하나밖에 없을까. ‘독재’ ‘독과점’ 같은 게 떠오르는 건 나만의 과민반응 일까.

지난달에 끝난 드라마 ‘프로듀사’ 마지막 회의 제목은 ‘장수 프로그램의 이해’였다. 소제목은 ‘초심을 잃지 말 것’이었다.

‘프로듀사’에 나온 장수 프로그램 대표는 ‘전국노래자랑’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전국노래자랑’은 전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늘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전국민이 ‘전국노래자랑’을 기분 좋은 장수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무한도전’은 좀 다르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가장 ‘핫’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나 같은 시청자 입장에선 뜨거워서 좋은 것도, 너무 뜨거워서 싫은 것도 있다. 어쩌면 무한도전 가요제가 최근엔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도, 너무 뜨거워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역대 예능 프로그램 중에 ‘너무 뜨거워서 불편하지만 또 계속 보게 된다’고 느낀 것도, 돌아보면 ‘무한도전’ 뿐인 것 같다. 하긴 그런 독특함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과 애정이 갈수록 점점 커지고, 결국 ‘무한도전’이 ‘음원깡패’가 된 것이겠지만.

무한도전

MBC TV 매주 토요일 저녁 6시20분

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자처하는 남자들이 매주 새로운 상황 속에서 펼치는 좌충우돌 도전기.

★시시콜콜 팩트박스

1) 올해 무한도전 가요제의 라인업은 ‘박진영-유재석’, ‘윤상-정준하’, ‘GD&태양-광희’, ‘아이유-박명수’, ‘밴드 혁오-정형돈’, ‘자이언티-하하’로 결정됐다. 현재 ‘무한도전’ 홈페이지에서는 역대 가요제 발표곡 중 최고의 곡을 투표로 뽑고 있다.

2) ‘무한도전’의 음원 파워는 가요제가 본격적으로 방송되기도 전부터 나타났다. 이번 가요제를 준비하면서 아이유가 기타를 치며 부른 ‘무릎’이란 노래가 방송 직후부터 주말까지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이 노래는 정식 음원이 없는 미발표곡이다.

3) ‘무한도전’은 2005년 4월23일부터 2005년 10월까지 ‘토요일’이라는 프로그램의 ‘무(모)한 도전’이라는 코너로 방송됐다. 이후 2005년 10월29일부터 ‘강력추천 토요일’에서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 등으로 방송되다가 2006년 5월6일부터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으로 분리해서 방송됐다.

방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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