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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도 불 속 21일 견딘 '비색의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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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도 불 속 21일 견딘 '비색의 심연'

입력
2015.07.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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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고려청자 재현전 개최

14~19일 대구 수성아트피아서… 청자주병 등 80여 작품 전시

1,300도 가마 속에서 21일을 견뎌 피어난 비색 청자들이 세상 나들이를 한다. ‘천상의 빛, 해겸 김해익 고려청자 재현전’이 14~19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전시실 전관에서 열린다. 창불 구멍과 망댕이가 없는 통가마에서 소나무 통장작으로만 불을 때는 김해익(61ㆍ사진) 도예장은 이번 전시회에서 21일간 가마에 장작불을 땐 뒤 21일 동안 식혀 요출(가마에서 도자기 등을 꺼내는 일)한 청자 등 80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고려청자 재현전이다.

5대(代) 도공인 그의 작업은 한마디로 불의 세계로 집약된다. 1971년 가업을 계승하려고 입문한 뒤 지난 44년간 고려청자 재현의 핵심 공정인 ‘고화도 환원 소성’의 실체를 구명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불 실험을 계속해 왔다. 고화도 환원 소성은 용어만으로 전해져 왔을 뿐 구체적인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고려청자 제작의 비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회가 주목 받는 이유는 두 가지. 불 실험 44년의 내공으로 다다른 고화도 환원 소성 방식으로 낸 작품들이라는 점과 이 방식을 실현하기 위해 밤낮없이 21일이나 가마에 장작불을 때서 낸 비색 청자라는 점이다. 편리하고 효율 뛰어난 전기가마, 가스가마가 대세를 이룬 세상에서 그는 손가락질 받으며 고되고 험한 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홀로 ‘불의 일가’를 이뤄 전통 방식으로 ‘고려청자에 가장 근접한 청자’를 세상에 내놓은 김 도예장을 만나 그의 도예 작업과 작품 세계, 불과 삶 이야기를 듣는다.

_이번 고려청자 재현전에 선보일 작품 소개부터….

“저는 신라토기, 분청사기, 백자를 거쳐 청자를 시작했습니다. 청자를 하려면 토기, 분청, 백자 기술을 다 섭렵해야 한다는 것이 선친의 가르침이자 저의 소신입니다. 토기ㆍ분청ㆍ백자 기술은 청자 기술의 바탕입니다. 이번 재현전에도 상감운학문매병, 순청과형병, 비룡형주자 등 청자 60점과 백자 10점, 분청사기 10점을 함께 내놓습니다. 청자는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에서, 분청과 백자는 수성아트피아 멀티아트홀에서 전시됩니다.”

_가마의 형태가 매우 단순하면서 독특합니다. 통가마를 선택하신 이유는.

“초반기의 작업과 불 실험을 통해, 보통 4~6개인 불칸에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불 때기 방식인 망댕이 가마의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망댕이마다 양 옆으로 난 창불 구멍으로 장작을 넣어 불을 때면, 불을 땜으로써 얻는 열 상승 효과보다 구멍을 통해 유입되는 외부 공기에 의한 열 손실 효과가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가마의 망댕이와 창불 구멍을 다 없애고 가마 입구 아궁이와 굴뚝만 뚫려 있는 일자형 등요(登窯) 통가마를 지었습니다.

통가마는 입구에서 때는 불만으로 가마 전체를 가열하고 축열하여 기물을 소성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망댕이 가마보다 더 높은 불 기술이 필요합니다. 망댕이 가마는 첫 번째 망댕이에 불을 때서 가열, 축열한 다음 그 열을 이용해 다음 망댕이로 불때기가 넘어가는 릴레이 방식이라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불을 때는 현장은 망댕이 하나 규모입니다.”

_고화도 환원 소성이라는 불 때기 기술을 설명해주세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다다른 결론이었습니다. 1,300℃ 고화도의 가마에서 불심(불의 힘)을 계속 끌고 가면서 환원의 여건을 이뤄내는 방식입니다. 좀더 높은 단계의 불 기술이 필요한 방식입니다. 환원이란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상태에서 불을 땔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산소 없이 어떻게 불이 탈 수 있습니까. ‘불로써 불을 막아’ 환원 분위기를 만드는 기술에 이르러서야 고화도 환원 소성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의 가마에서는 환원을 걸기 위해 1,250℃ 무렵에 이르면, 충분한 축열(畜熱) 없이 가마를 막아 불완전 연소 상태를 만듭니다. 이것은 제대로 된 고화도 환원 소성 방법이 아닙니다. 또 전기가마나 가스가마는 환원을 걸기 위해 연기를 집어넣는 방식을 택합니다. 어느 경우에도 충분한 축열을 얻을 수 없습니다. 충분한 축열 없이 충분한 환원 소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_21일 밤낮 동안이나 가마 불을 땐다는 것은 상식으로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힘든 작업일 텐데요.

“가마 형태가 통가마로 정해졌지만, 그것만으로 고화도 환원 소성을 이뤄낼 수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불 기술이었습니다. 불 기술의 요체는 철저하도록 불의 단계를 차근히 밟아나가야 한다는 것과 불을 골고루 펴서 먹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중 어느 것이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화도를 견디지 못해 기물이 온통 허물어져 내리거나, 가마가 무너지고, 발색이 비색 아닌 갈색이나 회색으로 수준이 확 떨어집니다. 초기에는 일주일 정도 불을 땠습니다. 고화도에 이르기 위해 점점 더 기간을 늘려오면서 지금 21일에 이르게 된 것이죠. 문제는 고화도는 이뤘지만 고화도를 견디지 못해 기물과 가마가 무너지거나 발색이 갈색으로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화도로 21일 동안이나 불을 때면서도 기물이나 가마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그 불로 비색을 이뤄내는 것. 그 경지에 닿는 데 40여 년이 걸렸습니다. 그게 저의 불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죠.”

_이번 재현전을 여는 소감은?

“세상 사람들이 저의 청자 너머로 가마 불을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00℃를 넘는 불의 힘과 그렇게 스무하루를 넘긴 불의 결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자 기술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불 기술마저 잃어버린 ‘고려청자의 나라’ 이 땅에서 어렵사리 찾아낸 저의 불 기술을 더욱 정련해서 후대에 물려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윤곤 엠플러스한국기자

약력

1971년 5대 도공 입문

1987년 제17회 경상북도공예품경진대회 특선

1990년 제20회 경북도공예품경진대회 특선

2009년 3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상 수상

2012년 2월 한국을 빛낸 사람들 전통도자기연구공로부문 대상

2012년 1월 ‘해겸 김해익 고려청자 재현전’

2013년 10월 KBS1 TV 공감다큐 ‘마지막 불꾼, 청자를 꿈꾸다’ 김해익 특집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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