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방문하는 한의원이 있다. 그곳을 알기 전, 수 년 동안 이런저런 병원을 전전했으나 차도는 없었다. 진료하는 의사마다 각기 다른 처방을 하고, 심할 땐 상반된 진단으로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의사의 뻣뻣하고 무성의한 태도에 기분이 상해 책상에 있던 명패를 홱 돌려놓고 나와 버린 적도 있다. 면전에 집어던지지 않은 인내심을 지금도 장하다 여긴다. 그러다가 지인의 소개로 지금 다니는 한의원을 알게 됐다. 한번 다녀본 후 믿음이 생겨 줄곧 찾게 된 건데, 특별히 훌륭한 약을 쓴다거나 손만 대면 통증이 사라지게 할 정도의 명의라서가 아니다. 그분의 장기는 소위 ‘입 치료’다. 딱히 말발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바라본 환자의 상태와 거기에 걸맞는 이야기를 조근조근 건넬 뿐이다. 건강에 대한 입 바른 얘기들, 가령 생활습관에 대한 기본사항을 충고할 때조차 설득력이 남다르다. 듣고 있으면 따끔하고 뜨끔해진다. 본인마저 난감한 병증이라면 같이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정성도 드러난다. 아픈 사람은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의 태도가 진심인지 가식인지 판별하는 촉수가 예민하게 발달돼 있기 마련이다. 병은 사람의 일 중 가장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사항들을 일깨운다. 그리고 말은 쓰기에 따라 최선의 치료제일 수 있다. 말하기 위해선 먼저 잘 들어야한다. 의사님들, 귀부터 열어주시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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