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박경수(31·사진)는 LG 유니폼을 입고 있던 지난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된 뒤 고심 끝에 이적을 결심했다. 제시 총액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대부분 보장액으로 자존심을 살려준 kt의 적극적인 구애를 뿌리칠 수 없었다.
그러나 kt도 박경수에 대한 눈높이가 그리 높은 건 아니었다. 2003년 성남고를 졸업하고 고졸 내야수 최고 계약금(4억3,000만원)에 입단한 박경수였지만,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평범한 선수’였다. Kt는 워낙 저변이 취약하다보니 그나마 수비가 안정적이고 경험이 많은 박경수를 영입해 내야진의 안정을 꾀한 것이다. 그래서 조범현 kt 감독은 박경수가 4월까지 2할4푼에 홈런 1개에 그쳤지만 꾸준히 기용하며 지켜 봤다. 하지만 전반기 종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박경수의 변신은 kt와 LG를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 10일 수원 삼성전 멀티홈런에 이어 11일에는 안지만(삼성)을 상대로 쐐기 투런포를 쏘아올리며 삼성전 3연승의 주역이 됐다. 12일 현재 홈런 11개로 벌써 자신의 시즌 최다홈런(2008ㆍ2009년 8개)을 갈아치웠고, 타점(36개)도 2008년 43개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 확실하다. 2할대 초반에 맴돌던 타율도 2할6푼1리(253타수 66안타)까지 끌어올렸다.
데뷔 13년 만에 최고 성적을 내고 있는 박경수를 바라보는 kt는 흐뭇한 반면 LG는 또 씁쓸하다. 유망주였지만 꽃을 피우지 못해 결별을 택했고, 공교롭게도 이적하자마자 터진 대표적인 LG 출신 선수만 벌써 김상현(kt), 박병호(넥센)에 이어 세 번째다. LG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2군을 전전하던 김상현은 2009년 시즌 도중 KIA로 트레이드되자마자 타율 3할1푼5리에 36홈런, 127타점을 폭발하며 팀 우승을 이끌고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박병호 역시 2011년 넥센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2012년부터 지금까지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로 성장했다.
이들 외에도 이대형(kt)이 지난해 LG에서 FA가 돼 KIA로 옮긴 뒤 역대 최고 타율(0.323)로 활약했고,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이용규(한화)와 김태군(NC)도 LG 출신이다.
박경수의 맹활약으로 다시 떠오른 ‘탈 LG’ 효과는 우연만은 아니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되살아난 잠재력이다. 조 감독이 그랬고, 염경엽 감독이 그랬다. 김상현은 2009년 활약 당시 “조범현 감독님 덕분이다. 이제는 1,2경기 부진하다고 빠지지 않으니 마음이 편해져 야구가 잘 되는 것 같다”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염 감독은 박병호를 영입하자마자 4번에 고정시켜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라고 믿음을 보냈다. 2003년 LG에 입단한 박경수는 유지현 코치의 후계자로 꼽히며 박용택(2002년)에 이어 2년 연속 잭팟을 터뜨릴 루키로 LG가 큰 기대를 했던 선수다. 2013년까지 10년간 가을잔치에 나가지 못한 LG는 코칭스태프의 조급함이 유망주의 발목을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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