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를 순방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본주의의 탐욕적 속성을 전세계 빈부 격차와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하며, 연일 선진국과 주요 대기업 지도자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교황의 비판과 지적에 대해 대부분 권위에 압도돼 수긍하는 분위기지만,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에서는 ‘마땅한 대안도 없는 비판’이라는 불만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11일 뉴욕타임스와 AFP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9일 볼리비아 방문에서 교황은 과도한 자본주의 추구를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비난했다. 또 돈에 대한 탐욕을 단순히 나쁜 것을 너머 ‘인간성을 망치고 인류를 노예로 삼는 행위’라고 질타했다.
교황은 “세계 도처에 땅 없는 농부, 집 없는 가족, 권리 없는 노동자들, 그리고 존엄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은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대기업들과 대부업체, 일부 자유무역 조치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충격을 주는 긴축 조치들의 막대한 영향력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를 ‘새로운 식민주의’로 규정했다.
교황은 10일 남미 순방 3개국 중 종착지인 파라과이에서도 “파라과이의 견고하고 안정된 민주주의를 환영한다”면서도 “사회 불평등 문제를 묵인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약한 자, 불우한 자들을 생각하지 않는 경제 발전은 진정한 발전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자본주의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비판이 이어지자 전세계에서는 정파 별로 아전인수적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극좌 성향의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교황을 ‘뜻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옛 소련의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낫과 망치 조각이 포함된 십자가상을 선물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바티칸 TV로 생중계된 화면에서 교황은 선물을 받은 뒤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볼리비아 야당은 “무신론 공산주의의 상징”을 선물했다며 모랄레스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교황이 고향 남미 순방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한층 더 드러내면서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부정적 반응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남미에서도 보수성향이 두드러진 칠레가 대표적으로 이 나라는 교회와 경제 엘리트 사이의 유착이 뿌리 깊은 곳이다. 신문은 또 교황의 발언은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로버트 존슨 신경제연구센터 소장을 인용해 ‘교황이 구체적 대안 없이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만 비난한다’는 반론이 미국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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