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찬성측에 지분 약속 발단
반대측, 행정·업체 한통속 불신
시, '법대로만' 중재 외면 빈축
“사람이 살 수는 있게 해줘야 될 것 아닙니까”12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에서 만난 김모(65)씨가 만나자마자 털어 놓은 하소연이다. 김씨는 7년 전 부산에서 하천리로 내려와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조용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제주 생활은 집 앞 채석장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먼지 등으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김씨에게 최근 더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석산개발 업체인 A개발이 지난해말로 사업기간이 종료됐지만 기존 사업부지 일부와 새로 매입한 토지에 대한 신규 석산개발허가를 받기 위해 지난해 2월부터 환경영향평가 등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 동안 채석장 주변 주민들과 함께 제주도와 서귀포시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한 번은 소음과 관련 민원을 제기했는데 다음날 소음 측정을 위해 공무원이 찾아왔을 때는 작업을 하지 않아 채석장이 조용해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며 “업체와 행정이 지금까지 단 한번도 개선방안을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을 믿고 신규 허가에 대해 동의할 수 있겠느냐”고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채석장 주변 주민들은 행정당국과 해당 업체뿐만 아니라 같은 하천리 주민들과도 갈등을 겪고 있다. 채석장 신규 허가 과정에서 A개발이 하천리 마을회에 석산개발사업의 지분 10%를 약속하면서 사업이 업체와 마을의 공동사업 형태로 추진, 찬반 주민들간에 갈등 구도가 형성됐다.
채석장과 멀리 떨어져 별다른 피해가 없는 찬성측 주민들은 300여가구에 이르고 있지만, 정작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채석장 주변 주민들은 20여 가구에 불과하다.
또 채석장 인근에 모 종교단체의 연수원과 A개발이 신규 허가 과정에서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찬성측 주민들은 간접적으로 연수원측이 사업 추진에 동의해 줄 것을 요청하는 등 이해당사자간 입장이 얽히고설키고 있다.
하천리 마을회 관계자는 “20년 넘게 채석장이 운영되고 있고 같은 지역에 다른 석산개발업체들도 2곳이 더 있는 상황”이라며 “신규 허가와 관련해 마을 전체의 이익을 위해 A업체로부터 사업 지분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업체 관계자는 “연수원측과 협의를 진행했지만 너무 무리한 요구를 제시해 수용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환경영향평가 등 행정절차를 이행하면서 절충점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허가관청인 서귀포시는 법적절차대로만 허가절차를 이행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1년 넘게 소극적인 행정으로 일관하면서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지난해 환경영향평가 초안에 대한 설명회와 공청회 과정에서 제기된 주민들의 요구사항들은 환경영향평가 본안에 반영될 것”이라며 “중립적 위치에 서서 행정절차를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현행 산지관리법에는 토석 채취 등 석산개발을 위해서는 사업지구 반경 300m 이내의 주민들과 시설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동의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다. 다만 예외조항으로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경우에는 동의 절차를 대체할 수는 있다.
김영헌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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