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최지 선정 로비 대가로
1991년부터 간부들 1600억원 챙겨
美 검찰, 비리 의혹 대회 조사 확대
가디언 "견제 없어 괴물 됐다"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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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뛰어넘는 흥행을 이어가며 수십년 간 전세계 체육계뿐 아니라 대회 유치를 희망하는 각국 정부를 쥐락펴락해 온 국제축구연맹(FIFA)의 추락은 한 순간이었다. 올해 5월 27일 새벽 6시(이하 현지 시간) 스위스 취리히의 최고급 호텔 ‘바우어 오 락’에 갑자기 수사관 10여명이 들이닥치면서 시작된 FIFA 뇌물 스캔들은 미국 법무부와 스위스 검찰의 수사를 통해 충격적 실체가 속속 들어나고 있다. 급기야 미국 상원이 오는 14일 청문회를 열어 FIFA 비리를 추궁하기로 해 FIFA의 타락상이 청문회 소환자 입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될 지경에 이르렀다.
● 부패 온상 북중미축구연맹 개혁 첫발
전세계를 뒤흔든 이번 FIFA 스캔들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FIFA 산하 지역 연맹 중 하나인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이 최근 FIFA 개혁안의 밑그림을 마련했다.
CONCACAF의 개혁안은 FIFA에 대한 독립 기관의 감독뿐만 아니라 ▦FIFA 고위간부들의 임기 제한 ▦재무제표와 임원 급여 공개 ▦집행위원회에 독립적인 구성원 포함까지 포괄하고 있다. 미국 축구연맹의 수닐 굴라티 회장 등과 함께 FIFA 개혁안을 만들고 있는 사미르 간디 변호사는 “우리는 부패 근절을 위한 방안 마련을 위해 여러 단계의 계획을 마련했다”며 “이는 첫 번째 단계”라고 말했다.
개혁안이 실행되려면 특별회의에서 CONCACAF의 회원 41명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CONCACAF 출신 인사들이 이번 FIFA 뇌물스캔들에 상당수 관여돼 있어 부패의 뿌리가 깊은 만큼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우선 스위스 취리히에서 부패 의혹으로 체포된 제프리 웹 FIFA의 부회장이 CONCACAF의 회장이다. 그의 전임자이자 이미 이전에 뇌물 수수혐의로 미국 당국에 의해 기소된 잭 워너 역시 CONCACAF 회장이자 FIFA의 부회장직을 겸임하고 있었다. 이번 미국 사법 당국의 FIFA 수사를 가능하게 했던 내부고발자 척 블레이저도 CONCACAF의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탈세와 뇌물 수수 등 범죄를 저질렀다.
● 개최지 선정 때마다 거액 뇌물 오가
FIFA의 부정부패를 파헤친 미 검찰의 공소장은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공소장에 따르면 FIFA 간부들이 1991년부터 24년 동안 뇌물로 받아 챙긴 돈은 1억5,000만달러(약1,658억원)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그렇다.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 영향을 주기 위한 뇌물이었다. 2010년 월드컵을 개최를 둘러싸고는 모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뇌물로 유치경쟁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모로코는 집행위원들에게 100만달러를, 남아공은 이에 10배에 달하는 1,000만달러를 집행위원에 뇌물로 건넸다. 결국 남아공이 2010년 월드컵을 유치했다.
유럽에 비해 축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미국이 축구 국제기구인 FIFA를 수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미국의 내부고발자가 비밀첩보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미국대표로 1990~2011년 CONCACAF 사무총장을, 1997~2013년 FIFA 집행위원을 지냈던 척 블레이저가 2011년부터 미국의 정보원 역할을 했다. 그는 집행위원 시절 자신의 몫으로 10%로 챙기는 등 뇌물 수수로 ‘미스터 텐프로’라고 불렸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미국 수사당국에 의해 탈세와 돈세탁, 뇌물 등의 혐의로 적발당하고 최대 20년형을 선고 받을 상황에 처하자 FIFA의 비리를 까발리는 대신 형을 감해주는 ‘플리바게닝’을 한 것이었다.
외신들은 그가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FIFA 모임에 마이크를 숨기고 들어가 간부들의 발언을 녹음해 FBI에 넘겼다고 보도했다. 또한 그는 1992년 무렵 1998년 월드컵 유치를 놓고 프랑스와 끝까지 경쟁했던 모로코 월드컵유치위원회가 자신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줬다고 자백했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분노일까. 지난 9일 FIFA는 척 블레이저를 뇌물 수수와 부패 혐의 등을 물어 영구 제명했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미 연방수사국(FBI)와 수사당국은 스위스 검찰과의 공조로 7명의 FIFA 고위직 간부를 체포한 것에 이어 미 법무부는 FIFA 고위직 간부 9명, 미국과 남미 스포츠마케팅 회사 간부 4명, 뇌물수수 중재자 1명 등 총 14명을 기소한다고 밝혔다. 혐의는 공갈, 온라인 금융사기, 돈세탁 공모, 탈세, 국외계좌 운영 등 47개다. 특히 잭 워너 전 FIFA 부회장에게는 월드컵을 유치 조건으로 남아공에게 1,000만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적용됐다.
지금까지 월드컵 유치에 뇌물이 오간 것으로 검찰에 기소된 것은 1998년과 2010년 월드컵이지만, 다른 월드컵의 유치 경쟁 때에도 뇌물이 오간 사실이 있는지 검찰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17일 스위스 검찰은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53번에 걸친 자금세탁 정황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2018년에는 러시아가, 2022년에는 카타르가 월드컵을 치르기로 돼 있다. 여기에 이사 하야토우 아프리카축구연맹 회장이 2010년에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고자 한 카타르로부터 180만달러를 받았다고 밝힌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앞으로의 수사가 더욱 주목 받고 있다.
● 러시아ㆍ카타르 월드컵으로 수사 확대
부패 스캔들 수사가 FIFA제국을 위협하면서 자연히 17년간 회장으로 재임했던 제프 블래터 FIFA회장도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래터 회장은 지난 5월 29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치러진 FIFA 회장 선거에서 5선에 성공했다. 유럽 등 서방 쪽 회원국의 반대가 거셌지만 아프리카 아시아 중미의 일부 회원국과 카리브해의 회원국들은 블래터 체제의 FIFA가 제공하는 연례보조금과 월드컵 개최 때의 특별 상여금 등 혜택 때문에 블래터를 지지했다. 블래터 회장의 재선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한 회원국들은 블래터의 하야를 거세게 촉구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블래터가 회장직을 유지한다면 2018년 월드컵 보이콧을 지지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블래터 회장은 5선에 성공한지 나흘만인 지난달 3일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그 역시 지난 5일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는 프랑스와 독일 대통령들의 정치적 압력이 작용했다고 폭로하는 등 FIFA 비리의 핵심으로 계속해서 자신이 지목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새 회장 선출을 위한 선거는 오늘 12월 예정됐으며 오는 20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리는 집행위원회에서 선거일이 결정된다. 차기 회장 후보로는 미셸 플라티니 유럽연맹 회장, 미셀 반 프라그 네덜란드축구협회장, 지난 선거에서 블래터에게 패한 알리 빈 알-후세인 왕자 등이 물망에 올라있다.
FIFA 견제장치 마련할 수 있나
FIFA의 미래를 위해서는 블래터와 측근들의 비리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디언은 “FIFA만 유독 각 국가의 법과 국제법 위에 군림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어떠한 민주적인 감시와 견제도 받지 않고 어떠한 도덕적인 규범에도 구속 받지 않는 FIFA가 지금과 같은 괴물이 되어버린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며 “블래터의 비리보다도 FIFA라는 조직 자체를 원점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엇보다 이미 과거에 내부개혁에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블래터 회장의 지시로 지난 2011년 스위스 바젤대학교 마크 피스 법학교수를 의장으로 FIFA개혁을 위한 독립위원회를 구성해 최종 보고서가 지난해 4월 제출됐지만 블래터 회장의 과거 비리 사건 연루혐의와 관련된 내용이 최종보고서에서는 FIFA내부 인사에 의해 삭제됐다.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 비리 의혹을 조사하던 FIFA의 윤리위원회의 마이클 가르시아 수석조사관은 지난해 12월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가 축소 공개되면서 사실과 결론이 왜곡됐다며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비리 연루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독립적인 조사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FIFA의 개혁은 현재 진행중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개혁을 본받아야 한다는 지적 도나오고 있다. IOC는 지난 2002년 동계올림픽을 미국 솔트레이크시가 유치하는 과정에서 솔트레이크시 올림픽 유치위원회가 IOC위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자 IOC 위원 10명을 쫓아내고 21년간 자리를 지켰던 후안 사마란치 위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내홍을 겪었다. 이후 IOC는 조직 운영 투명성 강화 등 개혁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IOC 정기총회에서 통과된 ‘올림픽 아젠다 2020’에 따라 지난 4월에는 토마스 바흐 위원장을 비롯한 IOC 위원들의 수당과 활동비를 공개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FIFA는 투명성 강화뿐만 아니라 옛날처럼 회장의 정치적 야망에 의한 자금 사용이 아닌 장기적 계획에 따른 자금 사용이 필요하며 무의미한 위원회를 줄여 예산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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