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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국민주권을 택한 그리스 투표

입력
2015.07.1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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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넘어가버리면 채권자와 채무자는 불화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된다. 하지만 그 문제들이 바로 얼마 전 결과가 나온 그리스 국민투표처럼, 있는 그대로 그것도 이처럼 공개적인 방식으로 제기된 것은 드문 일이다.

지난 5일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유권자들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그밖에 독일이 이끄는 유로존 기구 등 국제 채권단이 요구한 추가 긴축 요구안에 대해 압도적으로 반대 표를 던졌다. 이 결정으로 인한 경제적 이득이 뭐가 됐든 간에, 그리스 국민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우리는 더는 참지 않겠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투표를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생각하는 건 오판일 수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그의 지지자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스인들이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체제인 다른 국가들의 눈에는 무책임한 일방주의로 비춰진다. 사실 다른 유로존 국가들은 지금의 그리스 상황을 그리 측은하게 보지 않는다. 그 나라들에서 국민투표를 했다면 틀림없이 그리스에 부과된 긴축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는데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왔을 것이다.

그리스에 대해 참을 수 없다는 독일 같은 큰 채권국가들의 시민만이 그러는 게 아니다. 유로존에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들 사이에 특히 이런 분노가 광범위하게 번져 있다.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또는 리투아니아에 가서 행인에게 물어봐라. 그러면 이들로부터 라트비아의 연금 수급자가 하는 말과 비슷한 대답을 들을 것이다:“우리는 실패했고 그를 통해 교훈을 얻었는데 그리스는 왜 그런 교훈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인가?”

어떤 이는 유럽 사람들이 그리스인들의 고통에 대해, 또 긴축이 그리스를 망가뜨린 것에 대해 잘 몰라 그러는 것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정말 이런 내용을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생각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여론이란 게 이런 모든 조건을 갖춘 이상적 환경 속에서 구체화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 비용과 혜택을 따져 묻는 이성적 판단을 누르고 원초적인 감정과 격분을 불러일으킨 그리스 국민투표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일단 짚고 넘어갈 것은 그리스 채권국들이 소수 몇몇이 권력을 휘두르는 과두제 국가가 아니고 거대 민간은행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유로존에 가입했고, 민주적으로 자신의 유권자들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 기관들이다(이들이 2012년 그리스에 돈을 빌려준 자국은행들이 도로 돈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을 승인한 것이 과연 정당했는지 아닌지 따져보는 건 별개의 문제로 치자). 그러니까 이 문제는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유로존 금융기관 사이의 분쟁이 아니라 유럽 민주주의끼리의 충돌인 것이다.

추가 긴축안에 반대표를 던지면서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재확인했다. 더 나아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민주주의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경제, 사회, 정치적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 즉 국민주권을 주장한 것이다. 그리스의 국민투표가 무언가를 위한 승리였다면 그건 바로 국민주권 확보였을 것이다.

이건 유럽에게는 아주 불길한 조짐이다. 유럽연합(EU) 그리고 유로존은 더더욱, 국민주권의 행사가 시간이 갈수록 점차 약해질 것이란 기대 속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지금까지는 거의 실현 가능하지 않았다. 결국 인기를 얻는 건 국민주권이니까 말이다. 경제 통합으로 개별 국가의 정책 운신 폭이 줄었기 때문에, 바랐던 대로 국가별 행동은 감소했다. 그리스의 국민투표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깨뜨리는 결정타가 됐을 것이다.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리스 재정 위기를, 절약하며 소박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독일 사람들과 씀씀이가 헤프고 속 편한 그리스인들을 비교하는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경제적인 상호 의존의 이야기-결국 부주의한 채권자가 있기에 나쁜 빚쟁이도 있는 법이다-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했다면 채권국과 채무국이 서로 부담을 나누는 게 수월했을 것이고, 그리스와 유로존이 ‘우리 대 그들’로 양분되는 걸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좀더 근본적으로 보면, 경제 통합은 유럽의 정치적인 영역 확장에 따라 가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개별 국가들의 자율성이 줄어든 데 대한 보상으로 유럽 차원에서 민주적인 행위를 할 여지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 민주주의를 위한 승리였을 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 사태가 유럽 대중들이 정치적 통합으로 가는 과정에 나서기를 주저해서 발생한 것인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각국 정치인들이 소심하게 행동해서 일어난 것인지 따지기엔 너무 늦었다. 어찌됐든 결론은 오늘날 유럽에서 민주주의는 오직 국민주권을 주장하는 것으로만 재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리스 유권자들이 해냈다.

국민투표는 아주 중요하지만, 대개의 경우 상징적인 정치적 행동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리스 대중들이 진정한 국가주권을 행사할 수 있을 유로존 탈퇴, 자국 통화 도입 등의 경제적 조치들을 이어서 결심할 배짱이 있는가 여부다. 결국 채권국의 요구 조건들은 그다지 많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리스인들이 이번 “반대” 투표를 하면서 다른 유로존 민주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바람대로 굽히게 될 거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한 것이라면 그들은 또 다른 절망감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배울 것이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 교수ㆍ경제학

번역=강아름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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