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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안전자산 회귀

입력
2015.07.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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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사태와 중국 증시 폭락의 와중에 우리나라 증시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대량 유출되는 파장이 일고 있다. 아직 전면적인 ‘엑소더스(대탈출)’ 상황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 9일 동안 외국인이 무려 1조208억 원 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하며 코스피 2,000선까지 무너뜨렸을 정도니 만만치는 않은 기세다. 금융시장에서는 신흥국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상황을 ‘글로벌 투자자금의 안전자산 회귀(flight to quality)’로 설명한다.

▦ 투자시장에서 벌어지는 안전자산 회귀란 기본적으로 불이 났을 때 값나가는 물건을 급히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는 거나 마찬가지다. 한 나라가 디폴트 상황에 빠지게 되면, 가장 먼저 극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그 나라 통화가치의 폭락이다. 대외채무를 갚을 국제결제수단, 즉 달러(유로)가 바닥날 정도까지 갔으니, 그 나라에서 달러는 귀해지고 자국 통화가치는 그만큼 폭락할 수밖에 없다.

▦ 위기국의 통화가치 폭락은 그 나라의 자산가치 폭락으로 이어져 투자자에게 큰 손해를 입힌다. 예를 들어 한 미국인이 멕시코에 있는 호텔을 347만 페소를 주고 샀다고 치자. 구입 당시 페소화 환율이 달러 당 3.47 페소였다면, 100만 달러를 쓴 셈이다. 그런데 위기가 닥쳐 페소화가 달러 당 6.94 페소까지 폭락하면 호텔 가격은 달러 기준 50만 달러로 쪼그라든다. 투자자로서는 순식간에 50만 달러의 손실을 입은 셈이 된다. 이런 상황은 위기국의 주식과 채권 등 대부분 금융상품에서도 동시에 발생한다.

▦ 글로벌 자금의 안전자산 회귀는 이런 손실을 피하려고 일단 위기국에서 투자금을 빼내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어 위기국과 비슷한 약점이 있거나 위험 확산 가능성이 있는 신흥국 등에서도 투자금 이탈현상이 벌어진다. 안전자산 회귀는 투자상품 간 자금 이동도 촉발한다. 주식보다 가격이 안정적인 채권 수요가 높아지고, 금값이 치솟기도 한다. 최근 그리스에서는 때 아닌 명품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단다. 서민들까지도 향후 예금 손실이나 물가 폭등 등을 예상해 그나마 가치 변동성이 낮고 환금성도 높은 명품을 구입해두자는 것이다. 역시 일종의 안전자산 회귀지만, 참으로 안쓰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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