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은 한국 인디 음악이 태어난 해다. 홍대 앞의 대표적인 라이브 클럽 프리버드가 문을 열었다. 델리스파이스, 자우림, 체리필터,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10㎝, 디어클라우드 등 인디 밴드들이 이 곳에서 연주를 하고 이름을 얻었다. 한국 인디 음악의 역사적 현장인 프리버드가 11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지난해 문을 연 ‘빅버드’(프리버드2의 애칭)로 프리버드의 역사는 이전되겠지만, 이로써 원년 라이브 클럽들이 모두 고향집을 잃게 됐다. 한국 인디 음악의 태동을 함께 목도한 라이브 클럽 드럭과 블루데빌은 DGDB로 합쳐 장소를 옮겼다.
프리버드는 홍대 앞 놀이터 인근, 그러니까 홍대 주변에서도 굉장히 목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2000년대 들어 임대료가 치솟으며 이미 오래 전 유흥 번화가로 바뀐 구역이다. 독특한 디자인이 눈길을 끌던 옷가게와 예술가들의 작업실, 개성 있는 인테리어의 카페와 식당, 레코드가게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대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주점과 식당,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점령했다. ‘홍대 문화’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번화가 한복판에 20년 역사의 라이브 클럽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그 위치가 지하도 아닌 지상 2층이라는 점은 차라리 경이로울 정도다.
나흘간 이어지는 ‘굿바이 프리버드’ 공연의 첫날인 8일 오후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프리버드를 찾았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까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는 시각. 클럽 안은 직원들과 무대에 오를 밴드 멤버들이 전부였다. 클럽에서 만난 정영진 대표는 “2년 전부터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건물주도 임대료를 많이 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위치 자체가 워낙 비싼 곳이니 어쩔 수 없었죠. 오죽하면 건물주가 ‘여기서 라이브 클럽을 유지할 수 있겠냐’고 했겠어요. 임대료가 2007년 인수한 뒤 70% 정도 올랐습니다. 수입은 반대로 떨어졌고요.”
해가 지고 밤 8시 공연이 시작하자 조금씩 손님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밴드 멤버가 아닌 손님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첫 번째 밴드 B101이 무대에 올랐다. 새로운 멤버 편성으로 하는 첫 공연이라고 했다.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석승일은 “우리 같은 인디 밴드에게 설 자리를 주는 소중한 공간이었는데 사라진다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1년 전 데뷔 앨범을 낸 워너(ONEr)가 이날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프리버드에서 태어난 이들은 공교롭게 11일 마지막 공연에도 서게 됐다. 기타리스트 조이현은 “고등학생이던 1996년 이 곳에서 체리필터의 공연을 보면서 로커의 꿈을 키웠는데 프리버드의 마지막 공연을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관객들도 아쉬운 건 매한가지다. 학생 시절부터 10년간 프리버드에서 공연을 관람했다는 30대 직장인 류지혜씨는 “지하에 있는 다른 클럽과 달리 2층에 있어서 답답하지 않은 느낌이 좋은 곳이었다”며 “재능 있는 신인 밴드들을 무대에 세우는 기획력도 좋았다”고 했다.
클럽의 인구밀도는 밤 10시쯤 이날의 하이라이트 워너가 무대에 올랐을 때도 처음과 크게 달라지 않았다. 이날 자리를 지키고 있던 관객들은 대체로 워너 팬들이었다. 가장 손님이 많았을 때도 20명이 넘지 않았고, 35세 미만의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바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은 “주말에는 40~50명 이상이 오기도 하는데 평일은 오늘처럼 많지 않다”고 했다.
이날은 마지막 주 공연이어서 입장료를 받지 않았지만 이전까지 이 곳의 입장료는 20년 전과 다름 없는 5,000원이었다. 일반 주점과 달라서 두 병 이상의 술을 많이 마시는 손님도 거의 없고 안주를 주문하는 손님은 아예 없었다. 테이블의 회전율이 높은 것도 아니어서 50명이 들어온다고 해도 5,000원짜리 맥주 한 명씩만 마시면 주말 하루 매출은 50만원밖에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매출로만 1,000만원 안팎의 운영비를 충당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홍대 앞에는 아직 20여개의 라이브 클럽이 남아 있지만 사정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V홀의 주성민 대표는 “한정된 매출과 매년 오르는 임대료 사이에서 고민하는 건 다른 라이브 클럽도 비슷한 상황”이라며 “홍대 문화를 만든 라이브 클럽들이 자본에 밀려 소외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라이브 클럽의 경영 악화가 단지 임대료 상승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클럽 운영자들 모두 인지하고 있다. 인디 음악계의 판도 변화가 클럽 운영에도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실험적이고 새로운 음악보다 가요풍의 말랑말랑한 음악을 만드는 인디 레이블들이 주를 이루면서 록 중심의 라이브 클럽은 찬밥 신세가 되고 록 마니아들도 떠나고 있다. 레이블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름이 알려진 밴드들이 클럽 공연을 기피하는 일도 많아졌다. 간단한 장비를 갖추고 무료 공연을 하는 카페가 늘어나는 것도 유료 라이브 클럽에는 썩 좋은 일이 아니다.
정 대표는 “20년 전과 비교하면 인디 음악계가 판이하게 바뀌었다”고 했다. “음악이 재미없고 색깔도 없으니까 마니아들이 떠나는 거겠죠. 일본이나 호주, 유럽을 가도 모두 ‘록은 죽었다’고 말해요.” 하지만 그는 낙관적이다. 음악이 좋으면 언제든 관객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려고 합니다. 록의 힘이 줄어든 만큼 프리버드2도 이에 맞춰 기획 방향을 실험적인 일렉트로닉으로 바꿔볼까 생각 중입니다. 동아시아의 다른 라이브 클럽과도 연계해 프로그램을 만들어볼 계획도 있고요.”
프리버드는 11일 우울한 성년식 파티를 끝으로 사라진다. 이름처럼 밤새 ‘공짜(free)’ 공연을 열고 손님들에게 무료 맥주를 제공한다. 서서히 꺼져가던 불빛이 더 이상 초라해지기 전에 마지막이라도 화려하게 불태우겠다는 뜻일까. 러브X스테레오, 워너, 버닝 몽키스, 허니 페퍼 등 10개 팀이 오후 6시 30분부터 자유로운 새가 되어 떠날 이 곳의 영혼을 위로하며 밤새도록 공연한다. 이날 누군가는 미국 록 밴드 레너드 스키너드의 곡이자 이 곳에 이름을 빌려준 명곡 ‘프리버드’를 연주할지도 모르겠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내가 내일 이곳을 떠나면 / 넌 날 기억해주겠니 / 난 이제부터 여행을 떠나야 하거든 / 둘러볼 것이 너무 많아 / 내가 여기서 너와 지낸다 해도 / 전과 같진 않을 거야 / 난 지금 새처럼 자유로우니까’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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