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벤처 등 성공후 금의환향 불구 강원랜드서 6년간 18억대 날려
미련 못 끊고 작년엔 해외 원정도박… 건강 나빠지자 야산서 목 매 숨져
한때 잘 나가던 주식투자자가 도박에 빠져 폐인으로 전락하더니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0일 강원 태백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9일 오전 8시45분쯤 태백시 황지동의 한 아파트 인근 야산에서 A(42)씨가 나무에 목을 매 숨진 것을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A씨가 최근 들어 지병이 악화돼 이를 비관해왔다는 주위의 진술을 토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제법 수익률이 높았던 주식투자자였다. 지난 2000년 육군 대위로 예편한 뒤 서울에서 주식투자 전문 벤처회사를 운영해 큰 돈을 벌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장교 시절부터 주식투자로 용돈을 벌었을 정도로 일찍부터 주식투자에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잘 나가던 A씨의 인생은 서울에서 태백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강원랜드 카지노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송두리째 흔들렸다.
카지노는 주식투자와 달리 그의 돈과 인생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그는 지난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카지노에 드나들며 주식투자로 모은 18억원 가운데 상당액을 잃었다.
재산을 잃자 A씨는 극렬한 도박반대 주의자로 돌아섰다. 이때부터 그는 청와대 등지에 ‘내국인의 카지노 출입을 제한하라’는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도 카지노의 폐해를 알렸다.
급기야 2010년 9월 청와대에 ‘카지노에 내국인 출입을 제한하고 도박 중독자들에게 적절한 사과 및 보상을 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으나 답변이 없자,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통령 암살을 언급한 글을 올려 살인예비 혐의로 기소돼 재판까지 받았다. 1심과 항소심에선 법원이 A씨가 온라인 상에 올린 협박성 글을 살인을 계획한 증거로 인정하지 않아 무죄 선고를 받았다.
앞서 2009년 초에는 국회 앞에서 강원랜드의 내국인 출입 제한을 요구하면서 흉기로 자신의 손등을 내리치는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봉합수술을 받을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A씨의 지인은 “여러 차례 스스로 출입제한을 신청해 봤지만 도박을 완전히 끊지는 못해 어렵게 모은 재산 가운데 상당액을 탕진했다”며 “과격한 행동은 자신이 겪었던 도박 중독 피해를 막기 위한 의지가 다소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일 뿐, 청와대 폭파 등에 대한 사전 준비나 고의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카지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지난해 마카오로 원정도박을 떠나 또다시 돈을 탕진했고, 6개월여 마카오 노숙자로 지내다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해 어렵게 귀국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태백시 공공근로에 나가 최근까지 한달 80여만원의 수입으로 어렵게 생활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건강마저 나빠져 충북 제천의 한 병원에서 6개월간 요양치료를 받기도 한 A씨는 결국 지난 9일 한적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생전에 “서울에서 주식투자로 성공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대를 강원랜드로 돌리지만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넋두리를 주위 사람들에게 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폐광지에서 도박중독 예방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은근(57) 도박반대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고한남부교회 목사)는 “도박중독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프로그램 확대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태백=박은성기자 esp7@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