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의 외무장관을 지낸 사우디 빈파이잘 알사우드(또는 사우드 알파이잘) 왕자가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75세.
35세이던 1975년 3월부터 사우디 외무장관을 지내다 지난 4월 말 개각으로 물러난 그는 공식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세계 최장수 외무장관이라는 데 국제사회에서 이견이 없다. 1월 즉위한 살만 국왕을 포함해 그가 외무장관으로 거친 사우디 국왕만 4명에 이른다.
사우드 왕자는 고질적인 허리 통증에 시달린 데다 지난 3월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걷는 사진이 보도되기도 했다. 사우디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신경 계통에 문제가 생겨 최근엔 말까지 어눌해 졌다고 한다”며 “이미 몇 차례나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문도 돌았다”고 전했다.
사우드 전 장관의 아버지는 사우디 3대 국왕인 파이잘(1964∼1975년) 국왕이다. 파이잘 국왕이 조카에게 피살돼 급사하지만 않았어도 사우드 장관은 유력한 왕위 계승자 후보 중 하나였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사우드는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학사과정을 마친 뒤 귀국해 사우디 정부의 핵심부서인 석유부 차관까지 지내면서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1975년 3월 파이잘 국왕 피살 사건 뒤 왕위를 이어받은 4대 칼리드 국왕은 그를 바로 외무장관에 임명했다.
재임기간이 40년인 만큼 그는 중동 외교의 산증인이기도 했다. 친미 외교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석유로 쌓은 부를 기반으로 한 사우디 ‘조용한 외교’의 한 축을 담당했다. ‘숙적’ 이란에 대해선 군사 행동보다 경제 제재로 대응했고, 레바논 내전 등 중동에서 벌어진 유혈충돌엔 중재자로 나섰다.
그렇지만 아랍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탓에 이스라엘 문제와 서방의 2003년 이라크 침공에 이은 사담 후세인 수니파 정권 퇴출을 놓고 미국 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2002년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정착촌에서 철수하는 것을 조건으로 아랍권 국가와 관계를 개선하자는 내용의 ‘아랍 플랜’을 제안했지만 이스라엘이 이를 거부하면서 무산됐다. 그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에 실패한 것을 애석해 하며 2009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내가 해낸 성공보다 실망감으로 나를 재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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