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날에 걸쳐 ‘최저 임금 6,030원’의 ‘생계 불안’에 시달리는 참이다. 길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시급과 월급을 점쳐보고, 서점에 가서도 ‘손재주로도 먹고삽니다’ 같은 책 제목을 흘낏거린다.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을, 윌리엄 모리스를 다시 읽어보자는 생각도. 19세기 산업자본주의 시대가 몰고 온 비인간적 삶과 노동의 딜레마 속에서 ‘노동은 개인 자유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행위이다. 결코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급히 선언했던 이 빅토리아시대 운동가는 과연 현자였다. 어떻게 하면 즐겁게 일하고, 적절한 결과를 누리며, 보람차게 살 수 있을까? 미술운동에 이어 전쟁과 평화, 생명과 진화 등 거대 담론을 그림책으로 풀고 있는 권윤덕 작가의 ‘일과 도구’는 우리를 비정한 고용 구조 너머 근육질 삶으로 안내한다.
첫 장면 그득히 펼쳐지는 동네 지도 속에 비닐하우스며 텃밭이며 구두 공방이며 중국집의 일과 삶이 숨 쉬고 있다. 작가의 첫 그림책 ‘만희네 집’이 있는 동네를 바탕으로, 사람의 손과 도구를 많이 사용하는 일-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어야 할 일을 손꼽아 담았다. 주인공 여자아이가 고양이 친구 양이와 함께 농부, 의사, 제화공, 목수, 요리사, 재단사, 화가가 일하는 곳을 찾아가 온갖 도구를 만져보고 묻고 들으며 감탄할 때, 어른 독자도 ‘흠, 구두를 이렇게 만드는구나’ 하며 그림 속 세부를 즐기게 된다.
구두골에 가죽을 앉히고, 집게로 가죽을 당겨 타카로 핀을 박고, 구두칼로 다듬고, 접착제 칠한 구두굽을 망치로 박는 과정을 시시콜콜 빠짐없이 그렸는데도 지루하거나 어지럽지 않다. 비단의 앞뒤 면을 써서 얻는 은은한 색과 또렷한 색에 공들인 선묘를 더하는 공필화 기법 덕분이다. 일하는 사람의, 다름 아닌 ‘아름다움’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오래 고민했다는 작가의 선택은 옳았다.
도구를 잡고 일하는 손, 그 몰입의 순간에 태어나는 사물과 생명, 그 사물과 생명이 다시 도구가 되어 일하며 근육을 키우는 사회, 돈푼으로 삶을 저울질하는 풍습 따위 없는 사회를 작가도 꿈꾸었을 것이다. 그래서 늘 다정다감한 그의 후기가 더욱 엄숙하게 여겨진다. ‘한 사람이 구두를 만들며 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림을 그려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희ㆍ시인(그림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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