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숙 설치미술 작가 다음달 공연
남ㆍ북 상징하는 실타래 풀어낼 계획
"인디언 학살 문제도 다루고 싶어요"
독일 베를린은 동서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기쁨, 이 극단적인 두 가지 감정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여전히 두 동강나 있는 현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옛 동독 지역에 북한 대사관이, 서독 지역에는 남한 대사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남북 대사관을 ‘실로’ 엮는 행위예술이 광복 70주년인 내달 15일 베를린 현장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이은숙(59) 설치미술 작가가 직접 남북을 상징하는 2개의 실타래를 땅에 풀면서 ‘남한 대사관-전승 기념관-브란덴브루크 문-홀로코스트 메모리얼-북한 대사관’까지 총 3.8㎞를 행진한다. 이 퍼포먼스를 한 달여 앞두고 9일 이 작가를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당일 행위예술 때 중요하게 쓸 형광, 주황색 실타래를 양손에 쥔 채 “실은 둘을 하나로 묶을 수 있기에 통일이란 뜻도, 잡아 당기면 술술 풀리기 때문에 얽매임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도 담을 수 있다”며 “과거 죽음과 생명을 다룬 작품부터 분열과 분단을 다룬 최근작까지 내 작품에서 빠지지 않고 실이 등장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여정에 포함된 ‘브란덴브루크 문’은 의미가 크다. 통일독일의 현장이란 상징적 의미도 있지만, 작가로서 본인 이름 석 자를 해외 언론과 미술계에 각인 시킨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7년 ‘사라진 베를린 장벽’이란 주제로 브란덴브루크 문 앞에 한국 이산가족 5,000명의 이름과 사진을 담은 높이 4.5m 길이 25m의 대형 조명설치 작품을 선보여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때도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분단’과 ‘이산가족’이었다.
이씨가 한국 분단에 집중하는 건 자신의 가족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한국전쟁 때 아버지는 함경남도 함흥에 자식 넷과 부인을 남겨두고 남한 군대에 들어갔다가 영영 고향 땅을 밟지 못하게 됐다. 이후 아버지는 평양의대를 다니다 거제도로 피난 온 어머니를 만나 남한에서 새 가정을 꾸렸다. 그는 “우리 가족 사진에는 어머니와 우리 5남매만 있고 아버지는 빠져 있다”며 “북에 두고 온 자식들이 눈에 밟혀 아버지가 함께 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분단은 아버지의 아픈 인생이자, 자신의 탄생 배경인 것이다.
이런 사연까지 더해져 해외에선 지속적으로 그의 작품에 ‘러브콜’을 보내왔다. 1986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10년 넘게 국내 미술 공모전에서는 낙방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독자기술(투명 폴리에스테르 필름에 형광실을 압착한 입체모형 건축)을 계발하고 개인전도 부단히 열었다. 그런 노력 끝에 미국 공모전 입상(1995, 1997년), 독일 초청전(1999년) 등을 통해 해외에 작품을 알려왔다.
이씨는 “학부(이화여대 섬유예술)와 대학원(홍익대 공예)이 달라 공고한 인적 네트워크도 없는데다 주재료로 쓰이는 비닐과 형광실 등이 신선하지 않고 유치하다는 혹평까지 받았다”며 “그래도 작품에 몰두하니 해외에서 먼저 알아봐 주더라”고 말했다. 해외 호평으로 웬만큼 꿈을 달성했지만 이씨는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많이 남아 있다. “미국에서 인디언 대량학살 문제를 다룬 작품을 선보이는 등 예술사에 남을 작업을 하고 싶어요.”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