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계의 ‘허니버터칩’으로 불리는 롯데주류의 ‘처음처럼 순하리’가 지난달 28일 출시 100일 만에 4,000만병 판매 신기원을 기록했다. 알코올 도수를 획기적으로 14도로 내리고 과즙(유자)를 함유, 소주 특유의 쓴 맛을 없애 20~30대 여성에게 어필한 것이 적중했다. 서울 시내 술집에서 만난 한 20대 직장여성은 “도수도 낮고 쓰지 않아 여성들에게 딱 맞는 소주”라면서 “2,3병을 마셔도 취하지 않아 좋다”고 했다.
소화기내과ㆍ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아무리 순해도 순하리도 소주”라면서 ‘순하리 열풍’에 숨겨진 문제를 지적한다. 유수종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저도소주도 많이 마시면 기존 소주를 마신 것보다 더 많은 알코올을 섭취할 수 있다”면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피하지방이 많아 음주 시 일시적으로 덜 취한다고 착각하지만 남성보다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어 장기간 음주를 하면 간에 치명적”이라고 했다. 박지원 한림대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음주 시 에스트로겐과 같은 여성호르몬이 간에 독성을 유발할 수 있어 과음을 삼가야 한다”고 했다.
전문의들은 저도소주 열풍으로 여성들이 이른바 ‘술 맛’을 알게 돼 알코올 의존성이 강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인간은 술을 마시면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돼 자신감이 생기고 행복해진다. 알코올에 의존하는 이들은 기억중추에 음주 시 느꼈던 쾌락만을 저장해 문제가 발생한다. 전용준 다사랑중앙병원 병원장은 “처음 술을 접한 여성과 과거 소주를 마시지 못한 여성이 저도소주에 길들여지면 술 맛을 알게 돼 알코올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목 넘김이 수월해 마시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문제다. 전문의들은 “기존 소주들은 쓴 맛 때문에 여성들이 소주 한잔을 나눠 마셨지만 순하리 같은 저도소주는 한 번에 마실 수 있어 폭음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전 병원장은 “알코올이 체내에서 거부감 없이 흡수되는 도수가 12~14도”라면서 “주류업체의 마케팅에 소비자들이 현혹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성들이 알코올을 과다 섭취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전문의들은 여성이 지속적으로 과다음주를 하면 월경이 불규칙해지고 난소에 영향을 미쳐 불임, 유산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박지원 교수는 “남성과 동일하게 장기간 알코올을 섭취한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간질환 유병율이 높았다”면서 “저도소주는 여성이라 할지라도 더 많이 알코올을 섭취하도록 유도하기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계성 서남의대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12년 소주 알코올 도수가 19도로 낮아지자 매출은 5% 이상 증가했다”면서 “저도소주 열풍으로 여성들이 더 쉽게, 더 많이, 더 자주 알코올을 소비하게 된 것이 문제”라고 했다. 전문의들은 여성이라도 1주일에 3,4번 이상 술을 마시고, 한자리에서 평균 주량이 소주 1병 이상이며, 최근에 가족은 물론 지인들에게 술을 자제하라는 말을 들었다면 알코올중독을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관련 표
혈중 알코올 농도에 따른 신체 증상 및 상태(단위: %)
혈중농도/소주 잔수
신체상태
0.05(소주 2,3잔)
상쾌한 기분, 약간의 감각마비
0,05~0.10(소주 6,7잔)
말이 많아짐, 불안감ㆍ긴장감 해소
0.1~0.15(소주 8,9잔)
이성적 행동조절 해제, 말ㆍ행동 증가
0,15~0.25(소주 14,15잔)
운동신경 마비, 언어구사 부정확, 건망증
0.25~0.35(소주 31,32잔)
구토, 의식혼탁, 보행불가
0.35~0.5(소주 37,38잔)
대소변 못 가림, 혼수상태
*미국 국립알코올남용ㆍ알코올의존연구소 1일 권장 여성 알코올 양: 42g
순하리 2병 음주 시 알코올 양 : 80.64g /0.14(도수)x720(소주 2병 용량)x0.8(알코올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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