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우리 집에 온 지 벌써 십 년이 넘었구나. 귀염둥이 손자들 잘 키워줘서 고맙다. 어디에 있건 난 너희들 엄마야. 고맙다 딸아.”
태어나서 처음 서툴게 편지를 써내려 간 사람은 서울 금천구 시흥동주민센터 성인문해교실 수강생 우복순(65) 할머니. 평생 읽고 쓸 줄 몰랐던 우 할머니는 한글을 떼자마자 큰며느리에게 편지를 띄웠다. ‘가족에게 편지쓰기’라는 평생의 꿈을 이룬 건 최영록(36) 독산3동주민센터 주무관과의 인연 덕분.
최 주무관은 지난 4월 65세 이상 노인가정을 직접 방문해 건강을 체크하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우 할머니의 연립주택을 찾았다. 당뇨와 혈압을 체크하고 확인 사인을 받기 위해 서류를 내민 최 주무관에게 우 할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는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라요.”
지장이나 도장을 대신 찍으면 그만인 일. 하지만 최 주무관은 사연에 귀를 기울였다. 충남 예산에서 빈농의 딸로 태어난 우 할머니는 초등학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아버지를 졸라 어렵게 받은 교과서는 농사일이나 도우라며 친할머니가 전부 불태워버렸다. 결혼해선 공장에서 일하며 두 아들을 길러내느라 공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당시 많은 어머니들처럼 우 할머니에게 글 공부는 가슴에 오래 묻어둔 평생의 한이자 꿈이었다.
얘기를 듣던 최 주무관의 머릿속엔 시흥동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성인문해교실이 떠올랐다. 독산3동으로 발령받기 전 2년 동안 시흥동주민센터에 있었던 최 주무관은 문해교실 교사와도 친분이 있었다. 최 주무관은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우 할머니의 사연을 전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 할머니의 한글 공부는 이 달로 3개월째. 매주 세 번씩 독산동과 시흥동을 오가며 열의를 불태운 덕에 지금은 한글 고급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최 주무관과의 특별한 인연도 계속 이어졌다. 지난 5월엔 최 주무관이 교실에 들러 “할머니를 잘 부탁한다”며 아이스크림을 돌리기도 했다.
우 할머니는 “휴대폰도 없고 글도 못 써 가족들에게 쪽지 한 장 남기지 못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며 “한글 과정을 끝내면 중학교 과정에도 도전할 계획”이라고 활짝 웃었다. 최 주무관도 “우 할머니가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끝까지 돕겠다”고 화답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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