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가까이 온 나라를 들쑤신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5월 20일, 보건복지부는 이름도 생소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의 국내 유입이 확인됐다는 자료를 배포했다. 한국에 들어온 신종 감염병 소식에 기자실이 술렁였고, 취재에 들어갔지만 위험성을 제대로 경고한 전문가는 없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과 국내 감염병 전문가들은 중동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주로 발생했으며, 전염력이 낮다는 점을 들어 지나친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치사율이 무려 40%에 달한다는 통계를 들이밀면 역시 의료상황이 열악한 중동 상황일 뿐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만일의 사태를 우려한 기사도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를 지켜드리지 못한 아들이 어떻게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볼 수 있겠습니까.’9일 경실련 강당에서 열린 메르스 사태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소송 기자회견에서 한 중년의 아들은 국가, 지자체, 병원을 상대로 소송에 나선 이유를 말하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어머니는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이나 노인의 활동보조인으로 병원을 방문했다가 감염된 173번 환자였다. 관리대상이나 보건당국이 놓친 이로 확진 이틀 만에 사망했다. 그의 눈물에 다시 5월 20일을 떠올리고 좀 더 뾰족한 경고를 내놨어야 했다고 후회해보지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메르스 초반 ‘사람 간 전파가 쉬운 질환이 아니라 초기에 환자를 격리해 치료하면 대중 감염 위험은 거의 없다’는 전문가들의 말은 사실 틀린 곳이 전혀 없다. 186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그 중 35명이 죽은 현재 상황에 비춰보면 황당한 궤변처럼 들리지만, ‘슈퍼 전파자’ 또는 후보로 거론됐던 이들이 고속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음에도 감염은 없었다. 그만큼 전파력이 큰 질병은 아니라는 얘기다. 주로 병원 내에서만 발생했는데도 감염이 꼬리를 물으며 확산된 것은 역시 허술한 방역망 탓으로 돌리는 게 맞다.
관리대상에서 빠진 메르스 환자가 병원을 옮겨 다니며 또다른 피해 병원을 양산하는 연쇄작용을 일으킨 게 메르스 사태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고리는 국민들의 건강권을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국가가 마땅히 끊었어야 했지만 실패했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이상하리만치 안이한 상황판단과 비밀주의 고집으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하물며 기자들에게 배포한 브리핑 자료에서도 응급실서 근무하다 감염된 의사를 환자 보호자처럼 ‘응급실 체류’라고 뭉뚱그려 놓았다가 뒤늦게 밝혀진 일도 있었다.
국회의 요구에도 메르스 관련 회의록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다. 8일 열린 국회 메르스대책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은 복지부가 요청자료 71건 중 단 3건, WHO(세계보건기구) 공문 등 다 알려진 자료만 제출했다며 성토했다. 복지부가 초반 병원명 공개를 반대한 이유조차 아직까지 파악이 안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봐주기 논란이나 청와대의 개입 여부는 아예 깜깜이다. 제대로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은 메르스 종식 선언 이후로 미뤄야겠지만 만들어야 할 정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료도 가리는 모양새가 석연치 않다.
어머니를 잃은 아들은 초기에 병원명을 공개했더라면 ‘슈퍼 전파자’도 생기지 않았고, 모친의 죽음도 없었을 것이라며 일차적 책임을 국가에 물었다. 승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지만 그럼에도 소송을 통해 은폐된 정보들이 일부 공개되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이번 사태의 의문점을 낱낱이 밝히고 따지지 않으면 이름만 달라진 또다른 메르스를 겪을 수 있다. 메르스의 1,000배 넘는 전염력을 자랑한다는 홍콩독감 국내 유입도 임박한 마당이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의 저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 ‘이미 일어난 미래’를 되새김질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도처에 미래의 시그널이 있는데 인지하지 못할 뿐이라는 드러커의 말은 참으로 섬뜩하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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