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미남은 아니다. 훤칠한 외모를 지니지도 않았다. 굳이 분류하자면 개성파 배우. 진지한 표정으로 종종 웃음을 이끌어 온 그가 코미디영화 ‘쓰리 썸머 나잇’(16일 개봉)에 얼굴을 드러냈다. ‘신라의 달밤’과 ‘주유소 습격사건’ ‘귀신이 산다’ 등의 코미디영화로 2000년대 전후를 풍미했던 김상진 감독의 작품이다.
9일 오전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임원희(45)는 “특정 영화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요즘 흥행이 안 된)코미디영화가 흥행할 때가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쓰리 썸머 나잇’에서 고객에게 시달리는 콜센터 상담직원 구달수를 연기했다. 영화는 달수가 오랜 친구인 만년 고시생 명석(김동욱), 제약회사 영업직원 해구(손호준)와 일탈을 꿈꾸며 부산 해운대를 갑작스레 찾았다가 겪게 되는 소동을 웃음을 버무려 전한다. 임원희는 최근 SBS ‘정글의 법칙’과 MBC ‘진짜사나이2’ 등에 출연하며 예능프로그램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작 ‘쓰리 썸머 나잇’을 8일 시사회에서 보고 난 느낌은 어떤가?
“마음에 들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내가 나온 영화에 대해 말하기는 언제나 쑥스럽다. 요즘 영화들이 다 어깨에 힘주고 화려함을 드러내는데 아날로그 같은, 사람 냄새 나는 코미디가 나와서 좋다.”
-영화 속 달수처럼 현실에서도 일탈을 꿈꿔본 적이 있나?
“우리 같은 사람은 잘 알려진 얼굴 때문에 일탈을 못한다. 배우 같은 직업이 일탈을 더 해야 하는데 나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한다는 일탈이라 해봐야 기껏 여행이다. 남자들끼리 자동차 타고 아무 곳이라 찾아가 캠핑을 하는 그런 일탈을 많이 꿈꾼다.”
-함께 연기한 김동욱, 손호준과는 영화 속에선 친구 사이이나 실제 나이 차가 많이 난다.
“나이 차라는 게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괜히 따지고 들면 더 신경 쓰인다. 피부만 봐도 나조차도 내가 40대라는 것을 금방 안다. 어쩌다 보니 나도 오십을 앞 둔 나이가 됐다. 그런데 남자는 다 애다. 노는 꼴이 다 똑 같다. 그래서 그런지 촬영 중 세대 차이는 못 느꼈다.”
-예상보다 수위 높은 애정 표현 장면이 나오던데.
“동욱과 호준이가 제일 부러워한 부분이다. 알짜배기는 나라면서(웃음). 촬영 뒤 ‘어땠어?’라고 묻기도 했다. 원래 상당히 야한 장면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에 도움이 안 돼서 최종 편집에서 빠졌다. 이번 영화는 섹시코미디가 아니니까.”
-제대한지 20년이 넘어 마흔 중반의 나이에 ‘진짜 사나이2’에 출연하는 기분은 어떤가?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군대는 똑같다. 단체 활동을 해야 하니까 통제 받고 자유가 없다. 나이가 들어서 다시 자유를 뺏긴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 유격할 때 제대로 못한다고 조교에게 혼나고 죄인 같은 처지에 놓이니 스트레스를 받는다.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보통 3박4일 동안 촬영을 하는데 진짜 군인보다 더 힘든 하루를 보낸다. ‘그림’이 나올 때까지 촬영을 해야 하니 군인이 이틀 동안 겪을 일을 하루에 다 치러낸다. 하루에 할 일을 오전에 다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보통 군대 일과가 오후 5시면 끝나는데 우리는 오후 8시까지 촬영할 때도 있다. 부대마다 자존심이 있어서 호락호락하게 대하지 않으니 우리만 죽을 맛이다. 부대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카메라가 한시도 쉬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또 예능의 재미다.”
-군복무 시절 장진 감독과 연극을 해서 ‘진짜사나이2’ 출연이 더 각별하게 느껴질 만도 하다.
“내가 병장 때 사단 안에 문선대가 생겼다. 가기 싫은데 명령이 떨어져서 파견 됐다. 이제 좀 쉬려고 했는데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 때 그곳에서 장진(임원희의 대학 선배다)선배를 만나게 됐다. 계급으로는 내가 제일 고참이었고 장 선배가 서열 3위 정도였다. 여러 부대에서 온 친구들을 내가 통제를 해야 해서 힘들었다. 그런데 사단 내부 여러 부대를 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다. ‘진짜사나이2’에 출연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해군도 가보고 특수부대도 가보고 했으니까. 새로운 부대를 찾을 때마다 두려움과 기대가 반반이다. 어떤 부대이고 어떤 부대원들이 나를 기다릴까 하는 생각에서다. 내가 군복무 할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군인들을 만날 때도 많다. 어떤 군인은 나에게 자기 아버지랑 동갑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그 친구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자기 아버지랑 동갑인 중년과 훈련을 하게 됐으니까.”
-힘들어도 ‘진짜사나이2’에 출연하기 잘했다고 생각하나?
“평소의 내 모습이 ‘진짜 사나이2’에 담겨있다. 내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으니 나쁘지 않다. 내가 재미없고 보는 분도 재미없으면 그만 출연하려고 한다. 생계수단이라 생각하며 출연하는 예능은 아니니까.”
-김상진 감독은 10년 전 알게 된 사이라던데 뒤늦게 캐스팅 된 느낌이다.
“왠지 내게 마음이 당겼다고 하더라. 나를 먼저 캐스팅하고 김동욱 손호준이 캐스팅됐다. 이들과 나이 차가 많아 내가 출연해도 되나 생각해서 김 감독에게 괜찮냐고 묻기도 했다(웃음). 김 감독은 안지 10년 됐으나 우정출연조차 하지 않았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다. 흥행이 되면 다음에 또 만나고 안 되면 못 만난다. 농담이다. 우리나라도 좀 연배가 있는 감독의 영화가 잘되면 좋겠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조지 밀러 감독처럼. 젊은 사람도 나이를 먹게 되니까, 나이든 사람들이 재기하면 그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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