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징용자들이 강제노역에 시달린 하시마(端島ㆍ군함도) 탄광 등 일본 메이지(明治)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록과 관련된 후속 대응을 놓고 주미 한국 대사와 일본 대사가 공개석상에서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일본 대사가 등재 과정에서 강제노역 사실을 명시키로 합의한 부분의 의미를 축소하려고 하자, 우리 대사는 약속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맞받아쳤다.
안호영 주미대사와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주미 일본대사는 8일 미국 워싱턴시 헤리티지재단에서 열린 ‘대사들의 대화’세미나에서 일본 산업혁명시설의 유네스코 등재에 대한 평가와 후속 조치를 놓고 첨예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사사에 대사는 “한ㆍ일간 합의를 통해 일본 문화유산을 등재한 것이 중요한 것이지, 다른 것들은 사소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일본이 등재 이전에는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를 취했다가 이후 번복하는 행태를 보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과거사와 관련해 일부 논란이 있고 양국 모두 국내적으로 어려움이 있음에도, 합의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매우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며 “바로 이것이 자랑스러워하고 평가해야 할 부분이며 나머지는 사소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안 대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모든 것이 문안으로 나와있고, 앞으로 양국이 합의한 것을 어떻게 이행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의장국 독일이 강제노역 사실을 주석으로 적시한 결정문을 마련하고 관련 위원국 전원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만큼, 강제노역 인정과 희생자를 기리는 후속조치를 이행하라는 주문이다. 안 대사는 “특히 유네스코도 일본이 합의한 것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덧붙였다.
두 대사는 2013년 상반기 비슷한 시기에 주미 대사로 부임했는데, 민감한 양국 관계를 둘러싸고 공개 토론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두 대사는 워싱턴 부임 이전인 2012년 무렵에도 각각 외교부와 외무성 차관 신분으로 힘 겨루기를 한 전력이 있는데, 사사에 차관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이른바 ‘사사에 안’을 전달한 게 대표적이다.
이날 세미나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과 관련, 한ㆍ미ㆍ일 3국의 대사를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미국 측에서는 성김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참석했다. 김 특별대표는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간 채, 북핵 문제에 대해 북한의 선 행동을 촉구하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역사문제에서 이견을 드러낸 한국과 일본의 두 대사도 북핵과 인권문제에서 대해서는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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