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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개발’이 ‘발전’이라는 미혹

입력
2015.07.0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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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세계은행과 태국 전력청은 태국 동부에 있는 ‘문’강에 2,400만달러를 투자해 팍문댐을 완공했다.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태국의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력생산용 댐이었는데, 연간 290GWh의 전기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건설 후 전력생산량은 15%에 그쳤다. 반면 댐 건설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강물이 흐르지 못하면서 강수량이 줄어들면 물에 아무 것도 살 수 없을 만큼 녹조로 인한 오염이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팍문댐 하나로 1,700여 가구가 이주를 했는데 댐을 건설한 후 수질오염으로 생계수단을 잃은 가구는 4배에 가까운 6,200여 가구에 달했다. 전체의 44%에 이르는 물고기 종이 사라졌고, 어획량은 80%나 줄어들었다. 댐을 건설하기 위해 경제성은 부풀리고, 환경성은 축소했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그러나 착잡한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태국의 메콩 에너지ㆍ생태 네트워크에 따르면 태국 전력의 60~70%는 방콕과 중부지역에서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방콕의 3대 쇼핑센터로 꼽히고 있는 MBK, 센트럴 월드, 싸얌 파라곤이 소비하는 연간 전력량이 278GWh에 달하는데, 이는 팍문댐을 비롯해 3개의 댐에서 생산하는 전기의 양보다 많다. 전기사용 하위 16개 시ㆍ군이 사용하는 양과 비등하다고 하니 그 규모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팍문댐은 특정 개발사업이 왜곡된 근거를 통해 현실화되고, 소량의 사회적 편익마저도 극히 일부에게 집중된 최악의 개발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사실 이쯤 되면 ‘문’강을 개발한 것이 그 사회에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불합리한 사례가 우리 사회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소비 증가율은 최근 계속 줄어들어 2013년과 2014년의 증가율이 각각 1.8%와 0.6%에 불과했다. 올해도 1%대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몇 년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전력수요 정점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부가 얼마 전 내놓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2029년까지 우리나라의 연 전력소비 증가율이 2.2%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전력수요량을 높게 잡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변수는 같은 기간 3.06%에 이르는 경제성장률로 보인다. 다소비업체가 많은 국내 산업 특성상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다. 이를 위해 원전 2기를 더 짓겠다는 계획도 같이 발표했다.

정부의 계획은 대형 발전소를 지어야만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공급 만능주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 받는다. 심지어 지난해 상위 계획인 에너지기본계획에서 공급 우선 정책을 버리고 수요관리 중심의 정책으로 재편하겠다던 정책 목표는 1년 만에 완전히 휴지조각이 됐다.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고, 전력소비량은 피크를 향해 가고 있는데, 일단 발전소부터 짓겠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이건 2020년대 들어 설계수명이 끝나는 원전의 수를 감안해 대체 원전을 확보해놓겠다는 속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에너지 계획이 아니라 잘 포장된 ‘개발사업 총량제’에 불과한 것 아닌가.

태국 전력청은 낮은 경제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팍문댐을 가동 중이다. 그리고는 라오스와 협력하여 훨씬 규모가 큰 싸이냐부리 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불합리한 개발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개발을 부른다. 우리나라의 전력생산량이 세계 10위에 이르렀다는 점은 이를 상징한다.

혹자는 행복해지기 위해 개발을 하는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개발을 했는데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 개발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발’이 곧 ‘발전’이라는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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