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개선안에도 되레 늘어, 공모펀드의 44%인 1600개나
수익률 떨어지고 위험관리 안돼,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 부실 운용
소장펀드·재형저축 펀드 등 정책성 펀드도 대부분 자투리 전락
곧 도입할 비과세 해외펀드로 기존 해외 펀드에 악영향 줄 듯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자투리펀드 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줄기는커녕 도리어 늘고 있다. 당국이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하듯 자투리펀드 해소를 독려하고 있지만 그때만 반짝할 뿐 약효가 오래가지 않는 모습이다. 미적거리는 업계도 문제지만 자투리펀드를 양산하는 진짜 주범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부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금융투자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운용 중인 공모펀드 3,576개 중 약 44%(1,593개)가 자투리펀드다. 2011년 말 39.8%에 달했던 자투리펀드 비율을 2012년 30%, 2013년 20%, 2014년 10%대로 줄이겠다던 금융위원회의 중장기목표는 이미 물 건너간지 오래다.
자투리펀드는 운용기간이 1년 이상이면서 설정금액이 50억원 미만인 소규모 펀드다. 스타 펀드가 대개 1,000억원이 넘는 운용자금을 갖고 있는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구멍가게 수준이다.
운용자금이 적으니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최소거래단위가 일정금액 이상인 채권 같은 자산에는 아예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등 펀드의 장점인 분산투자의 효과를 노리기 힘들다. 더구나 펀드매니저 한 사람이 여러 펀드(평균 6개, 설정금액 3,804억원)를 운용하는 상황이라 자투리펀드는 소외되기 십상이다. 분산투자도, 위험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수익률마저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펀드매니저 입장에서는 운용규모가 크고, 보다 많은 투자자들이 참여한 스타 펀드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라며 “그러다 보면 자투리펀드의 수익률이나 위험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투자협회는 2011년 6월 ‘펀드 규모 적정화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자투리펀드 해소에 나섰다. 운용방식이 비슷한 소규모 펀드를 하나로 합쳐 대형펀드로 운용할 수 있는 ‘모자(母子)형 펀드 전환’을 허용하고, 소규모 펀드간 합병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2012년에는 소규모 펀드 정리 이행 실태 점검 등 감독을 강화하고, 자투리펀드 청산이 미흡한 업체엔 불이익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올해 3월에도 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투리펀드의 청산이 더 수월해지도록 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청산 실적은 전무한 실정이다. 공모펀드 중 자투리펀드는 2011년 1,198개에서 2012년 1,151개로 조금 줄어드는가 싶더니 2013년 1,186개, 2014년 1,290개 등으로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1차적인 이유는 현재 수익률이 마이너스라며 펀드 청산에 반대하는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는 업계에 있다. 연락이 닿지 않는 투자자에겐 펀드 공시 등을 통해 동의 없이 자투리펀드를 정리할 수 있게끔 길이 열렸지만, 업계는 여전히 사후 민원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펀드 정책이 자투리펀드 양산을 부추기는 측면도 크다. 소위 정책성 펀드들은 정부 대책에 맞춰 펀드 상품 수는 많아졌는데, 가입기간과 가입대상자가 한정되고 세제혜택 등의 지속성에 대한 불신이 있다 보니 태생적으로 운용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
소득공제장기(소장)펀드와 재형저축펀드가 대표적이다. 소장펀드는 연봉 5,000만원 이하 직장인들의 목돈 마련을 위해 마련된 펀드로, 내년까지 가입 가능하지만, 이미 59개 중 49개가 자투리펀드로 전락했다. 34개는 설정금액이 10억원도 안 된다. 총 급여 5,000만원 이하 직장인 또는 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의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형저축펀드 역시 67개 중 63개가 자투리펀드로, 설정금액 10억원 미만이 52개에 달한다. 오온수 현대증권 연구원은 “세제 혜택 펀드는 일정 기간 이상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해지할 수도 없다”며 “가입한 펀드가 자투리펀드로 전락하면 투자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곧 도입되는 비과세 해외주식 투자전용펀드 역시 신규 펀드에만 세제 혜택을 부여하기로 하면서 비슷한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혜택이 없는 기존 펀드를 해지하고 신규 펀드로 갈아타면 기존 펀드는 자투리펀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간 자투리펀드가 줄지 않은 배경엔 정부의 정책적인 펀드 개발이 있었다”(김태훈 삼성증권 연구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책 펀드가 불가피하다면 자투리펀드를 피할 묘책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세제 혜택을 신규 펀드가 아니라 클래스형 펀드에 부여하면 운용회사의 비용도 줄이고, 기존 펀드의 소형화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펀드가 a, b, c형 등으로 나뉜 클래스형펀드에 새로운 클래스(예컨대 d형)를 만들어 세제 혜택을 부여하면 신규 펀드 난립이나 기존 펀드의 자투리펀드화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고찬유기자 jutdae@hankookilbo.com
김진주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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